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잊지 못할 추억의 후보가 있다. 1971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박정희, 김대중과 겨뤘던 카이젤 수염의 ‘정의당’ 진복기 후보다. 독특한 외모 때문에 시선을 끌었던 진복기 후보는 의외로 12만2,000여표(1%)를 얻어 당당히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진후보가 대중의 관심을 모으자 시인 고은은 장편시 ‘만인보’에서 “떳다 봐라/ 정의당 당수/ 코 밑의 팔자수염… 지나가던 고교생들/ 지나가던 여대생들/ 낄낄낄 웃어대니 복되어라/ 진복기”라고 읊기도 했다. 진씨는 87년 직선제 이후에도 대선 때마다 출마를 선언하곤 했으나 정작 본선에서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요즘 한국에서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물으면 종종 “대선 출마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되지도 않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선에 나서겠다고 설치면서 등장한 썰렁한 유머이다.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예비후보 등록을 한 사람이 70명을 넘어 섰으며 앞으로 나올 사람들까지 합하면 80여명은 족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50명 정도는 정치인이 아니라 교수, 종교인, 농부, 청원경찰, 청소부 등 일반시민들이다. 예비후보는 기탁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데다 신청서와 주민등록 초본 등 간단한 서류만 내면 되는 등 절차가 간단해 이같은 ‘난립’과 ‘장난성 출마’를 부채질 하고 있다.
정치인들 가운데서도 도저히 대권후보감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스몰 포테이토’들까지 잇달아 대권도전을 선언하고 나서는 형국인데 “믿져 봐야 본전”이라는 심리와 함께 지난 대선에서 탄생한 ‘노무현 신화’에 자극 받은 때문으로 보인다.
야당은 이미 후보를 확정했지만 여권은 이제야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한 상황. 여권에 11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터에 LA 출신 유재건 의원이 대선출마를 선언했다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퇴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경선 룰을 정하는데 후보들이 자기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많이 발전 했지만 변화가 더디어 내 비전을 펼치기에는 문제가 있더라”는 것이 사퇴의 변. 아무리 그렇더라도 예비후보 등록을 한 서류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퇴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라 볼 수 없다.
대선출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LA출신 인사가 서상록씨이다. 서씨는 남가주에서 ‘생 콜맨’이라는 이름으로 연방하원 공화당 예비선거에 3번이나 나섰다가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삼미그룹 부회장을 지낸 후 웨이터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던 인물.
2002년에 ‘노년권익 보호당’ 후보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가 본선 전에 사퇴했던 서씨가 이번에도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본선 등록 여부에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지지를 받으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이 지지율을 못 받으면 미국으로 건너 와 바텐더 생활을 하겠다는 것인데 대선을 희화화 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행태이다. 어쨌든 LA 한인타운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서씨의 모습을 볼 날이 그리 머지 않은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