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하트’는 멜 깁슨이 주연을 맡고 감독한 사극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 5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은 작품이다.
무대는 13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남쪽의 강국 잉글랜드의 침공을 받으며 압박과 설움에 시달리는 스코틀랜드 인들을 구하기 위해 민족의 영웅 윌리엄 월러스가 분연히 일어난다. 그는 수차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결국은 귀족들의 배신으로 잉글랜드 군에 잡혀 참혹한 고문을 당한 뒤 살해된다. 그러나 그의 패배와 죽음은 결국 스코틀랜드 독립의 밑거름이 돼 스코틀랜드는 1314년 배녹번에서 잉글랜드 군을 물리치고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쟁취한다.
이 영화에서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나오는 로버트 브루스는 사실은 스코틀랜드 사상 가장 뛰어난 왕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도 잉글랜드와의 전투에서 연전연패하면서 홀몸이 돼 동굴에 숨어 지낸 시절이 있었다. 절망에 빠진 채 동굴 벽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거미줄을 치느라 분주히 뛰어 다니는 거미 한 마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몇 번이고 되풀이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이쪽저쪽으로 뛰어 끝내 성공시킨 데 감명 받은 브루스는 다시 몸을 일으켜 재기에 성공한다. 배녹번 전투에서 스코틀랜드 군을 이끈 사람이 바로 그다.
알프레드 대왕은 영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자가 붙은 왕이다. 9세기후반 거듭되는 바이킹의 침공을 막아내고 잉글랜드를 지켰다. 그가 없었더라면 영국의 국어는 덴마크어가 됐을 것이고 지금 전세계인들은 덴마크어를 배우기 바빴을 것이라는 게 사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그 또한 한 때는 시골 농가로 피신해 집안일을 하다 아낙네한테 “왜 빵을 태웠느냐”는 구박을 받은 일도 있었다.
패배를 딛고 일어난 지도자는 영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가 영국 식민지이던 시절 브래덕 장군을 따라 나간 일생 첫 전투인 포트 듀케인을 비롯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후 그가 지휘한 롱아일랜드, 할렘 하이츠, 브랜디와인 전투 등 숱한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이에 낙담하지 않고 버틴 끝에 1781년 요크타운에서 영국군의 항복을 받아내고 독립 전쟁을 성공으로 마무리 지었다.
워싱턴과 함께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으로 꼽히는 링컨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일생은 주하원에서 연방 상원 선거에 이르기까지 패배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원칙과 소신을 앞세운 그의 패배는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고 결국 대통령 당선을 거쳐 그를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놨다.
치열했던 한국의 한나라당 경선이 마침내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 후보의 승리보다 돋보이는 것은 박근혜 후보의 깨끗한 승복이다. 과거 한국의 정당사는 경선에 참가했다 세가 불리해지거나 지면 온갖 억지 이유를 갖다 대며 탈당하는 것이 관례화 돼 왔다. 그리고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직까지도 대통령을 시켜달라고 국민들에게 조르고 있다.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은 잘 나가거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가 아니라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다. 이겼다고 기뻐하고 졌다고 나가떨어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이겨내고 담담하게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타고난 그릇과 오랜 수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맹자는 “하늘이 인간에 큰일을 맡길 때는 반드시 근육과 뼈를 피곤하게 하고 배고프게 하며 뜻을 꺾어 의지를 시험한다. 이는 마음을 움직여 끈기를 기르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잘못한 후 깨닫고 좌절한 후 다시 일어난다... 우환 속에 삶이 있고 안락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길게 보면 목표만 올바르다면 그를 이루기 위해 싸우다가 지느냐 이기느냐는 별반 중요하지 않다. 박 후보의 흔쾌한 패배 수락은 한국 정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 후보가 아픔을 딛고 일어나 큰 지도자로 거듭 나기를 기원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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