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국에 다니러갔다가 열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에 계속적인 외식과 피로가 겹쳐 장에 부담을 주어 일어난 것이었다.
한국의 초청기관 관계자가 숙소에서 땀을 흘리며 누워있던 나를 끌고 병원으로 갔다. 청결한 병원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하얀 가운의 상냥한 간호사들을 보고 의사선생님의 친절한 진찰을 받자니 벌써 병이 나은 것 같았다.
젊은 의사의 자상한 배려는 집 떠나 병들어서 잔뜩 심통이 난 나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능숙한 진찰, 언제 놨는지 모르게 통증도 짧았던 주사, 그리고 약 처방까지 잘 받았다. 기분이 좋았다. 병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를 데려갔던 사람이 갑자기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병원비가 비싸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불한 금액을 물었더니 외국서 온 사람을 차별한다며 2만5,000원이나 냈다고 했다. 처음에는 환산이 안되어 미국 돈으로 250달러인줄로 착각을 해 비싸다는 말에 동감을 했다. 계속해서 투덜대는 그가 보험이 있었으면 3,000원 정도라고 해서 정신 차려 환산해보니 25달러였다. 보험이 있었으면 진료비가 3달러였다는 얘기였다.
미국 병원과 비교를 해보니 이번엔 내가 화가 났다. 미국 병원에서 불친절하고 상업적인 간호사들, 청결하지 못한 진료실에 불쾌했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간호사들이 왜 퍼런색이나 꽃무늬 잠옷 같은 옷을 입는지 모르겠다. 그런 차림으로 병원 밖 출입을 자유자재로 해서 수퍼마켓이나 식당에서도 눈에 뜨인다.
게다가 진료비는 보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장난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의료보험이 없었을 때 병원에 갔다가 황당하게 비싼 돈을 지불하고 속이 상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의료보험도 한국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미국 의료혜택은 저소득층과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메디케이드가 병원치료비 전액을 지불해주지만 보험이 없고 저소득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는 미국에서 의사를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연봉 4만 달러정도의 미국 일반 직장인은 HMO나 PPO로 보장된 건강보험이 없다면 사실상 불안하다. 특히 자영업을 하는 한인들의 경우 가족 중 한사람이라도 심각한 중병에 걸리면 10여년 밤낮으로 일해 일궈 놓은 비즈니스와 집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가 있다.
건강보험 없이 지내다 일을 당하여 상담을 해오는 한인들이 꽤 많이 있다. 저소득층은 아니지만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메디칼을 받을 수 없느냐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환자라 보험회사에서 받아주지도 않고 또 저소득층은 아니지만 보험비 부담이 크다고 생각된다면 매달 20~80달러의 비용으로 온가족 그리고 애완동물까지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 패밀리 케어(family care)와 같은 비영리단체가 있다. 보통 병이 있는 환자들은 일반 보험회사에서 가입을 허락하지 않는 데 반해 여기서는 현재 병을 앓고 있을 지라도 가입을 허락하며 병원 진료비를 상황에 따라서 70%에서 100%까지 삭감 받을 수 있도록 돌봐준다.
인권을 제일로 하는 미국에서 병원들이 노숙자를 함부로 대해 시끄러운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슈바이처 같은 정신으로 병원을 운영하겠다는 기업인이나 의사가 몇 명이나 있을까? 한국에서 만났던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을 이곳 한인사회에도 자주 만날 수 있다면 고된 이민생활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토마스 오 소셜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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