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목사 / 오클랜드성결교회 담임
로키산맥의 정상 부근에는 자작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무릎을 꿇은 모습을 하고 있다. 쉴 새 없는 폭풍한설을 견디느라 자신을 나직이 엎드려 생존의 길을 터득한 것이다. 한 두 해도 아니고 수백, 수천 년 이상을 그렇게 엎드리면서 그 불편한 자세를 후손들에게 끝없이 지키게 했다. 이 나무는 바이올린 제작에 애용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공명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원래의 반듯한 모습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변화를 겪으면서 나무의 내부에 어떤 작용이 생겨 울림의 현상이 강해졌을지 모른다. 강한 태풍에 우뚝 버티고 서 있던 참나무는 뿌리 채 뽑혔지만 세찬 바람을 맞으며 무수히도 머리를 숙였던 갈대는 그 가늘고 연약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었다. 맞서면 베임을 당하고 수그리면 살아남는다.
예수님의 말씀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온유란 부드러움이다. 여성적 유약함이 아니라 남성적 강인함이 깃든 부드러움이다. 온유는 강자의 성품이다. 역사상 모세는 가장 온유한 자라 칭해졌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 따르면 모세는 패배를 모르는 필승의 장군이었고 성격도 불같았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사막의 은둔생활을 통해 온유함을 터득하였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진정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다면 온유함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스스로를 연마하여 존재와 삶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돌은 두드리면 깨어지지만 흙은 두드릴수록 부드러워진다.
근육질의 몸매를 운명처럼 가꾸던 학창시절에 필자는 운동을 즐겼다. 산에 올라 수없이 발을 허공에 그리면서 돌을 격파하고 몸을 단련했다. 몸은 빨랐으며 조각처럼 다듬어졌다. 당시에는 태권도의 인기가 대단했다. 갓 유단자가 된 아이들은 검정 띠로 질끈 동여맨 도복을 어깨에 걸치고 교실 안을 휘저었다. 학우들은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한번은 하도 설쳐대기에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산에서 익히고 닦은 발기술을 본의 아니게 몇 동작 선보였다. 우리 교실은 그 이후에도 여전히 시끌벅적 했지만 더 이상 위압감을 주는 분위기와는 멀었다. 그 아이들은 기술은 익혔지만 무술의 도(道)에는 이르지 못했기에 껍죽댔던 것이다. 고단자가 될 수록 무도인들은 조용하다. 그들은 진정으로 강하기에 고개를 숙이고 어느 경지에 이르렀기에 부드러움을 귀하게 여긴다.
말없이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튀어나온 돌은 정을 맞는다. 사고를 당했을 때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존율이 높다. 아이들의 몸은 부드럽다. 뼈까지 어른의 강골에 비해 약골이다. 세상의 이치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경우가 많지만 약함이 생존의 최대 비결일 수도 있다. 끝까지 남는 것은 부드러움이다. 온유와 온유가 만나면 부드러운 기운이 팽창한다. 부드러운 기운이 이곳저곳에서 모여들어 상승기류를 형성하면 세상의 살벌함이 조금은 가라앉을 것이다. 엎드린 자작나무처럼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줄 수 있는 악기로 우리의 삶이 변신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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