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에서는 ‘호기심 천국’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꽤 인기였다. 왜 소변을 보면 몸이 떨려요? 왜 코를 골까요? 등등 일상생활에서 궁금했던 소재들을 재미있게 풀어내어 많은 호응을 받았다.
나 또한 그 방송을 즐겨봤지만 내가 더욱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저런 것까지 궁금해 할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까지 쏙쏙 뽑아내는 그 호기심에 오히려 더 감탄했다.
정말 한국 사람들은 호기심이 대단한 것 같다. 그 호기심은 모든 분야에 두루 펴져 있는데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 친구,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의 생활반경에까지 뻗어나가 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유난히’ 남의 집 사정에 궁금한 것이 많다. 언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연수입이 얼마인지, 세금은 어떻게 되는지… 그야말로 그 집의 숟가락이 몇 개 있는 지까지 알고 싶어 한다.
몇 년 전 만났던 어떤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듣더니 대뜸 ‘그럼 한 달에 ooo달러 정도 벌어요?’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더 더욱 공개되어 있었다. 예전에 내가 일했던 곳은 한 대기업의 자회사로 입사하는 순간 월급이 정해지고, 연수가 더해갈수록 호봉이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 들어온 지 3년된 김 아무개가 얼마를 받는지, 10년 된 최 아무개가 얼마를 받는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거기다 누가 오늘 부부싸움을 했으며, 누가 최근에 선을 봤으며, 누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는지까지 전 직원은 아니어도 부서의 모든 사람이 서로 공유하는 정보로 통했다.
연봉제가 도입되면서부터 이런 ‘투명성’이 좀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아마 지금도 동료들의 봉급 수준이 대충 어느 선인지는 공공연히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전혀 다르다. 내가 얼마를 받는지 말하지도 않고 누가 얼마를 받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왜 아직도 싱글인지, 여자 친구가 어찌되었는지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 묻지 않는 것이 예의다. 호기심은 똑같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함이 있다.
한국에서 온 내가 미국의 호기심 수위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이 사실이다.
실수도 연발했는데 한 미국인 친구에게 데이트하는 여자가 있다기에 ‘언제 결혼할 거야?’라고 물었다가 남편에게 민망한 눈짓을 받기도 했다.
그런 사적인 문제는 본인이 공개하기 전엔 절대로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좀 뚱뚱해진 미국인 친구에게 ‘어머 살이 좀 쪘네’라고 했다가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용모와 스타일에 대해 평가를 내려주고 비판을 내려주는 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그것 또한 사적인 부분이라 건드리지 않는 게 예의였던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이제는 미국인을 만나면 용모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상대방의 일상생활 변화에 대해서도 먼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대신 한인들로부터는 자주 듣고 있고, 또한 묻기도 하는 호기심이 아직 남아있다.
호기심이 많아서 좋은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일은 미국에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유정민 / 텐커뮤니케이션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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