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800만의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큰 주일뿐만 아니라 첨단 산업에서 패션, 사회적 트렌드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선도하는 주다. 지금은 미국의 주도적 이념인 감세, 환경 보호, 다이어트 등이 모두 이곳에서 시작됐다.
이처럼 미국을 리드해 가는 가주가 푸대접받는 때가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철이다. 공화당은 공화당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후보들이 돈을 걷으러 가끔 오기는 하지만 정작 표를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지는 오래됐다. 아마 1992년 클린턴과 아버지 부시와의 대결이 마지막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캠페인을 벌여봐야 결과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 가주는 테레사 수녀가 공화당 후보로 나오고 김정일이 민주당 후보로 나온다 해도 민주당을 찍을 분위기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당 후보도 아까운 돈과 시간을 가주에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들어 가주 출신 정치인으로 대통령이 된 닉슨과 레이건은 모두 공화당원이었다. 둘 다 가주에서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가주가 민주당 판이 된 것은 90년대 초 이후라고 봐야 한다.
그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1994년에 나온 프로포지션 187이었다. 당시 인기가 바닥을 달리고 있던 공화당의 피트 윌슨 주지사는 재선 전략으로 보수 백인 유권자들의 라티노 불법 체류자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기로 했다.
불법 체류자에게 교육, 의료, 웰페어 혜택을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안은 비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성이 전혀 없는 법안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라티노 불법 체류자를 색출해 이를 퇴학시키는 일은 교사들을 나치 당원화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육받지 않은 실업자를 길거리로 내몰아봐야 범죄인을 양산하는 것 외에 가주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함에도 불법 이민자가 보기 싫다는 이유 만으로 일부 보수 단체들은 자극 적인 캠페인을 펼쳐 주민 발의안 187은 통과되고 윌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공화당에 아무런 득을 주지 못했다. 187 자체가 위헌 판결을 받고 효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그 때까지만 해도 흑인과는 달리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가는 ‘스윙 보트’였던 라티노들이 공화당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닫게 됐다.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라티노들은 가치관으로 보면 오히려 공화당 성향이 강했지만 자신들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똑같은 일이 지금 전국적으로 벌어지려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상원 지도부가 타협해 만들어낸 이민 개혁안이 결국 물 건너갔다. 이는 부시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 주지 않으려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책략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공화당내 보수 반이민 세력의 극렬한 반대 때문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라티노를 껴안으려던 부시의 전략 또한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라티노의 공화당에 대한 반감도 고조되고 있다.
일찍이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미국 내 라티노 인구는 급속히 늘고 있으며 앞으로도 늘 것이라는 점이다. 라티노는 이미 흑인을 제치고 미국 내 최대 소수계 유권자 그룹으로 부상했다. 가주민의 1/3이 라티노며 인구 절반이 라티노인 LA는 시장과 검사장, 시의원의 1/3을 라티노가 차지하고 있다.
이런 중요한 유권자 그룹을 개떡같이 보는 공화당은 정신이 있는 당인가 없는 당인가. 당내 극렬 반이민 분자들이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공화당은 가주는 물론이고 장차 미국 전체에서 오랫동안 소수당의 굴레를 벗지 못할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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