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열심히 해라”
지난 2월쯤 내가 가르치는 합창단 소속 한인학생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있으면 어떻게 하니?”
미국에 이민온지 몇개월 되지 않은 학생이라 아직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대답이 없기에 나는 너무 답답해서 다시 한번 다그쳤다.
“만약 노력하는 게 보이지 않으면 D 나 F 학점 받는다!”
내가 가르치는 보이스 합창단은 이 학교의 ESL 프로그램 클래스와 스케줄이 잘 맞았는 지 특별히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이 2/3를 차지했다(대부분 히스패닉 학생들). 그래서 그 반에서 가르치는 노래들은 반복이 많고 아주 쉬운 노래들로 골랐다. 발음을 교정하고 외우기 쉽게 하기 위해 한 구절씩 여러번 반복하며 연습을 시키지만 그 한인학생은 매일 자기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안하고 몰래 껌을 씹거나 군것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수학이나, ESL, 과학 등 다른 과목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민 초기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당연히 첫번째 이유는 언어의 장벽이다. 한국에서 배운 회화 영어로 친구들과 가벼운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겠지만, 수업 중의 학문 영어를 알아듣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수학이나 체육, 합창 역시 마찬가지로 회화 영어와 학문 영어로 가득하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잘 아는 과목이라고 해도 말을 못 알아들으면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영어가 입에서 잘 나오지 않으면 답답하고 당황하며 창피해 하는 것은 어른이나 학생이나 마찬 가지 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못 알아 들었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손을 들고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하면 미국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천천히 다시 설명을 하든가 또는 말이 통하는 학생에게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하게 되어 있다.
합창단의 한인 학생은 몇 주가 지나가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설명하고 부모님을 만나자고 요청했다. 마침 내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라 주일 예배 후 교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부모님들은 특별히 이 학생이 어떻게 하면 미국 학교에서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간단히 여쭤봤다. “집에서 영어로 대화 하세요?”
두 부모 다 수줍은 듯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TV 시청과 독서마저 한국말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어를 빨리 배우고 미국학교에 빨리 적응하려면 학생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편안한 가정환경에서 온가족이 영어를 연습한다면 어린 학생이 겪는 이민의 충격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를 잊어버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10대의 청소년이 아무리 영어만 구사 한다고 해도 모국어를 잊어버리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 이민 온 가족의 부모님들이 먼저 집에서 영어로 대화를 한다면 한동안 답답하고 재미있는 상황이 일어나리라고 상상이 된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통해 자녀들에게 영어 배우기는 어른에게도 힘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또 그들과 어려움을 함께 하는 자세를 보여줄 수가 있다.
특히 부모들이 회화 영어뿐만 아니라 학문영어를 배우는 노력을 자녀들에게 보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가정 분위기를 만든다면 그런 학생들은 학교에서 손을 들고 당당히 질문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서재필 벨플라워 중학교 합창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