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초 한국의 중견 그룹 방계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1년 후배가 왔다. 호텔에 가서 만났더니 그 친구가 셀폰의 배터리가 약해져서 충전을 하여야 한다고 했다. 출장 때마다 충전기를 꼭 가지고 다녔으나 이번에 빼놓고 온 것이다.
묵고 있는 한인타운 내 호텔에도 한국 셀폰 충전기는 없다고 했다. 생각나는 대로 셀폰 대리점을 몇 군데 접촉하여 봤으나 아무데도 한국 셀폰을 충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수소문 한 결과한 만화가게에서 3달러를 주고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충전된 전화를 찾았다.
그 친구는 LA에 있는 동안 본의 아니게 한 번 더 ‘만화가게’에 갔었다고 나중에 전화했었다.
한국 셀폰의 충전 수요가 타운에는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셀폰 대리점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국을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은 한국 셀폰을 가져 올 때 꼭 충전기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한국 셀폰을 미국에 가져 와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자영업자 친구는 같이 저녁 먹고 차 마시는 동안 서너 번 “나 지금 LA에 있는데…” 하면서 걸려 온 전화를 끊곤 했다. 골프 약속 등 시시콜콜한 전화란다.
미국의 전기기구는 110볼트 기준이고 한국은 220 볼트 기준을 사용한다. 따라서 한국산 기구를 미국에서 쓰기 위해서는 변압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다.
이런 상식은 우리로 하여금 한국 방문 시 여기서 가지고 간 랩탑을 사용할 때 주의하게 만든다. 그러나 랩탑의 경우는 컴퓨터 안에 변압기가 포함되어 있어 그럴 필요가 없다. 물론 냉장고나 TV와 달리 사람들이 랩탑을 들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왜 국제적으로 이를테면 110볼트로 표준화하지 않을까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기술적으로 문외한이지만 기술적 이유 말고도 표준화에 따른 비용은 상당할 것이다. 각국의 사용 역사가 오래이기 때문이다.
통속적으로 문화(culture)란 ‘나는 가지고 있고 남은 없는 것’이라고 한다. 110볼트 사용 ‘문화’가 있고 220볼트 사용 ‘문화’가 있는 것이다. 이를 표준화 내지 규격화한다는 것이 기술적 이유를 제외하고는 꼭 정당화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civilization)’이라는 이름하에 그런 시도를 우리의 삶 곳곳에서 무의식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TV 등 생산업체가 랩탑업체와 달리 그들 제품 안에 변압기를 포함시키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다수의 냉장고, 세탁기, TV 등이 내수용이다. 즉 대다수의 고객들은 변압기의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객의 수요에 따라서 변압기를 제품 안에 넣고 안 넣고를 기업들이 결정한다.
셀폰의 경우도 수요가 적은 여유 배터리(spare battery)는 상대적으로 고가이다. 미국에서 셀폰 자체는 싸거나 거의 공짜로 제공해도 여유 배터리는 50달러 정도 주어야 살 수 있다. 그렇게 셀폰 회사들이 이윤을 낸다. 여유 배터리를 사용하면 전화를 충전할 필요는 없어진다. 그러나 전화를 충전할 수만 있으면 여유 배터리는 필요 없다.
‘애완동물 출입금지’(No Pets Allowed)사인이 가게 문에 걸려 있었다. 그 밑에 안내견(guide dogs)은 허용된다고 써있었다. ‘맹인 손님’은 어쨌든 그 사인을 못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럼 그 사인은 우리 같은 손님들이 보라는 것인가? 혹시 가게 안에서 개를 보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것인가? 좀 불확실 했지만 그 사인을 거는데 따른 비용도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타운 호텔이나 셀폰 대리점이 한국 셀폰 충전기를 구비해 놓는데 따른 비용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 셀폰 충전 서비스 수요도 별로 없고 한국 셀폰 사용자들도 별로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기업 이윤은 프리미엄 숙박서비스나 프리미엄 셀폰서비스 제공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요진 /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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