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에 대한 단상-집단의 광기와 개인의 자유의지
앙드레 바쟁은 사진으로서의 영화 예술을 일러 미이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그것이 결국, 자신의 기억을 박제하고 지문을 유전하고자 하는 집단광기의 예술적 현현에 다름 아니라면, 우리는 영화를 통해 전 세기에 대해 어떤 기억을 박제하고 싶어하는가?
달짝지근하고 뽀샤시하고 무척 쁘레샤야스한 그 무엇인가, 그도 아니면 영혼을 뒤흔드는 아픔과 인간이라는 두 글자에 전대미문의 균열을 내고, 그 은밀한 밑바닥에 잠복한 악마성과 이기심을 까발리는 기억인가?
인간들이 전 세기를 통해 이루어 놓은 박제들의 저장고를 들추어 본면, 인간은 어쩌면 우리의 생각보다 약간 더 고매한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묻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 박제한 기억들의 항목이란 것이 하나같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전쟁과 폭력의 광기, 피와 살의 미친 카니발에 대한 해부적 시선을 통한 인간의 자기 성찰이다.
우리는, 영화<피아니스트The Pianist>를 통한 인간의 자기 성찰을 마주한다. 특히, 인간의 자유의지가 집단이라는 폭력성 속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며 하찮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 짓밟히고 물질화한 인간성을 다시 인간성일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을 본다.
2002년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2003년 아카데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Roman Polanski)의 <피아니스트>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소피의 선택>, <안네의 일기> 같은 유태인 학살에 대한 보통의 이야기들을 훌쩍 넘어선다. 나찌의 광기를 응시한다는 의미에서는 <쉰들러 리스트>와 유사하지만, 폭력이라는 집단 광기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는 의미에서 <소피의 선택>에 가까우며, 헐리우드식의 영웅이 부재하다든지 수사학적 클리셰와 지나친 과장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영화를 동시에 넘어선다.
2. <피아니스트> -세계 속에 갇힌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유대계 폴란드 피아니스트였던 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의 실화를 원작으로 한 <피아니스트>의 특별함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인간(?)의 광기와 폭력성, 그리고 그 앞에서 한 없이 나약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집단과 개인, 전체주의와 개인의 자유의지 사이에 존재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대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
2차 세계 대전, 폴란드의 촉망받는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악명높은 아우슈비츠로 호송되어 가던 중 모든 가족을 잃었으나, 그의 재능을 아끼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홀로 살아남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도망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그를 돕던 사람들은 학살당하거나 사라지고, 결국 홀로 남은 스필만은 나찌에의 공포와 굶주림, 추위와 고독에 대항한 처절한 싸움에 홀로 내동댕이쳐 진다.
허기로 빈사상태에 빠진 스필만은 천신만고 끝에 폐허가 된 건물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쳐 먹고 구사일생하지만, 그곳에서 독일 장교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독일 장교의 청으로 스필만은 인생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다. 창이 깨어져 나가고 기둥이 허물어져 가는 집, 햇살 속에 부유하는 포탄의 먼지 속에서 추위와 영양실조로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움직여 스필만이 연주한 것은 바로 쇼팽의 야상곡이었다. 그들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이 너머와 저 너머에 앉아 끝없는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듯 음악 속으로 침잠한다.
오오, 세상에나. 우리의 정신을 칼날처럼 벼루어 대오각성으로 내몬 그토록 눈물겨운 야상곡, ‘너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우리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야상곡, 가슴이 뻐개지도록 아름답고도 슬픈 야상곡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왜냐고 묻는가?
그 야상곡 속에, 인간 개인의 자유의지과 선이라는 것이 집단과 조직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광기에 의해 어떻게 무차별하게 도륙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가혹한 질문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장교는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가해자인 동시에,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과 핏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단의 광기와 폭력에 의해 개인의 선의지와 자유의지와 개성을 박탈당했다는 의미에서 또 하나의 힘없는 개인이자 피해자였다.
한 때 예술가였고,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으며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후원하던 독일 장교는 스필만의 야상곡을 들으면서 과연, 무엇을 깨달았을까? 일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튕겨져 나와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막막함, 눈앞을 까맣게 덮는 생의 암전, 건널 수 없는 심연으로 검게 출렁이는 고통의 심연과, 그리고, 그리고 말이다, 갑자기 등을 돌린 삶에 대한 낯설음 정도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찌 독일 장교의 그 얼굴 표정을 잊을 수 있겠는가. 단 2분간, 그 폐허의 공간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야상곡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마주 앉은 스필만과 나찌 장교를 원초적인 인간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하여, 뼛속까지 집단과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인간의 광기와 폭력에 의해 유린당한 피해자들로 재탄생시켰다. 사물화하고 기계화한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비로소 진짜 인간의 언저리로 돌아오던 순간의 그 찬란함, 그것이 바로 절대 휴머니즘의 본모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스필만을 살아남도록 도운 독일 장교가 종전 후 소련군의 포로로 잡혀 강제노역 끝에 굶어죽었다는 사실(사실, 소련군에 포로로 붙잡힌 독일군들을 소련군은 강제노역과 기아로 살해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역사의 한 부분이다.)은 과연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악마들이 이러저러한 그럴듯한 이름표를 달고 숨어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3. 무엇이 우리를, 그래도, 살아가게 하는가
역사라는 광포한 힘의 메카니즘 속에서 개인의 의지와 힘이란 얼마나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우리는 <피아니스트>를 통해 개인의 의지대로 잘라버리고 조절할 수 없는 악과 광기와 폭력의 메카니즘, 집단의 광기 속에 갇힌 인간의 영혼이 자유를 찾아 비상하는 모습을 본다.
폭력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 마치 연기처럼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 번식하는 것. 그래서 나는 언제 이만큼 와버렸는지도 알지 못한 채 폭력과 광기의 노예가 되어 그것에 농락당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 말이다.
아이를 위해 한 대의 매보다, 소중한 칭찬 한 마디가 약이 될 줄 알면서도 우리는 아이에게 매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시작한 매질이 고민조차 없이, 더욱 아픈 매질로 바뀐 어느날에야 생각키우는 것. 그것은 바로 폭력은 광기이며 한 번 맛본 광기의 단맛은 쉽게 떨치기 힘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언제 이곳까지 와버렸을까, 자기 자신과 생이 한없이 낯설어지는 느낌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 늦어버린 듯한 바로 이 지점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너무 먼 곳으로 더 멀리 가버리기 전에, 세상과 개인의 모든 것에 대한 선택권과 결정권을 되찾는 일 말이다.
폴란드의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은 죠르쥬 상드와의 밀회 시기 야상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죠르쥬 상드가 시내로 쇼핑을 나간 그날, 억수같은 비가 내려 다리가 끊어지고 강물이 범람했다. 죠르쥬 상드는 밤늦도록 소식이 없었고 쇼팽은 죠르쥬 상드가 폭우로 불어오른 강에 빠져 익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슬픔과 불안으로 심약하던 청년 쇼팽은 가슴을 찢기며 야상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이 슬픔과 불안에 몸을 떨던 작곡가의 좌절과 절망의 표현인 야상곡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밤의 표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가 가장 나약해지고 아픈 순간 불끈, 힘이 솟듯이 또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큰 숨을 몰아쉴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정영화 기자> 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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