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는 노동과 자본이다. 이 둘 중 자본은 늘 우위에 있었지만 20세기 초 이후 노동운동이 활발해지고 노조가 생겨나면서 어느 정도 균형이 이뤄지는 듯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자본이 노동에 대해 결정적인 우위를 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1989년 11월9일 일어난 베를린 장벽의 붕괴다. 자유를 찾고자 하는 동독인들 열망의 산물인 이 사건은 독일 통일을 앞당기고 세계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몇 년 후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 자체가 해체되고 공산 압제에 신음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됐다.
이 일련의 사건은 세계 전체로 보면 틀림없는 역사의 발전이지만 서방 선진국 노동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20세기 말까지 선진국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노동자의 대부분이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라는 사슬에 묶여 노동시장에서 배제돼 왔기 때문이다.
지금 신흥 경제 강국으로 각광받고 있는 소위 ‘브릭스’(Brazil, Russia, India, China) 국가들은 과거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적 정책을 펴던 나라들이다. 인구로만 30억에 육박하는 이들 국가 노동자들이 세계 노동시장에 뛰어들면서 선진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테크놀러지의 발달은 웬만한 일자리의 ‘아웃소싱’을 가능케 해 선진국 노동자들은 임금이 오르지 않아도 일자리가 붙어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지난 10여년 동안 전 세계가 인플레 없는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브릭스’를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의 값싼 임금 덕이 컸다. 우리가 쓰고 있는 각종 농산 공산물 중 중국제품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월스트릿 저널은 지난 주 이런 호시절이 끝나가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주요 개발도상국들도 생산 여력이 한도에 도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임금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임금이 오르면 물건 제조원가도 오르고 그렇게 되면 전 세계적인 인플레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중국과 일본은 이미 금리를 올렸고 지난 주 유럽 중앙은행도 기준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이들 금리 인상보다 투자가들을 걱정하게 하는 것은 미 장기 금리의 상승이다.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단기 금리와는 달리 10년 만기 연방 국채 수익률로 대표되는 장기 금리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진다. 인플레가 높아질 것으로 투자가들이 판단하며 국채를 내다 팔아 채권가가 떨어지면서 수익률이 올라가며 반대의 경우는 채권가가 올라가면서 수익률은 떨어진다.
지난 주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심리적 저지선인 5%를 돌파하며 1년래 최고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연방 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를 기대했던 투자가들은 거꾸로 추가 금리 인상을 염려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지난 주 미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기 금리의 상승은 기업들에게도 부담을 주지만 그 가장 큰 피해자는 모기지 시장이다. 모기지 상품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금리의 상승은 가뜩이나 기록적인 주택 재고와 차압 증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인한 대출 기준 강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주택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 분명하다. ‘영원한 낙관론자들’의 모임인 미 부동산협회도 올 미 주택가의 추가 하락을 전망하면서 내년 후반께나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변동 이자율의 상향 조정이 본격화되는 올해와 내년 지난 수년간의 2배에 달하는 연 90만채의 차압주택 매물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23조달러에 달하는 미 주택시장이 이런 온갖 악재를 극복하고 빨리 회복될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