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은 풀러튼의 한 중산층 아파트이다. 모친상을 당하여 타주에 갔다가 돌아오니 이웃 집 일본계 부부가 찾아 와 조문과 함께 건너편에 새로 이사 온 젊은이들에 관한 불평을 했다. 원 베드룸에 15명씩 들락거리는데 밤낮 없이 새벽 3-4시까지 패티오에서 잡담을 하고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니고 했다. 그래서 사무실에 보고했더니 월말에 나가기로 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퍽이나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펴가며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알아 차렸어야 했었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그런 상식 없는 대학생들이 어디 있는가” 하고 흥분하며 “백인들이냐”고 물었더니 아시안 학생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그 한국학생들은 이후 더욱 마구잡이로 생활하다 며칠 전 아파트를 떠났다. 패티오 너머로 버려진 담배꽁초 더미, 온갖 쓰레기. 또 이웃사람이 불평했다고 그 사람 아파트 입구에 맥주 빈 깡통을 던져 놓는가 하면, 쫓겨나기 때문에 더 더욱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기에 분풀이하는 식으로 마구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이해가 안가는 점이 있었다. “요즈음 어느 곳이든 입주하는데 필요한 서류와 조사가 만만치 않을텐데…” 하고 사무실에 가서 알아보았더니 당초에는 한국에서 온 두 명의 학생이었는데 수입은 없지만 정기적으로 입금되는 은행잔고에 문제가 없어서 입주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마 한국에 있는 부모의 재정능력으로 유학을 온듯하다.
그들이 퇴거된 후 아파트 관리자가 노크를 하며 내 차고에 몇 시간 장비차량을 파킹하겠다는 허락을 구했다. 왜냐니까 한 달 전 그들이 입주할 때는 새 카펫, 새 페인트였는데 모두 망가뜨려 놓아서 내부 전체를 다시 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카펫에는 일부러 이물질을 쏟아 붓고 벽에는 온통 낙서와 구멍을 내고 곳곳의 붙박이 기물들은 다 부순 채 소위 앙갚음을 하고 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그 뿐인가. 파킹랏에 차를 버려두고 갔는데 뒷좌석의 시트를 아예 빼 버리고 일부는 거기서 취침을 했다고 한다. 차가 토잉되어 나가는 꼴을 주민들이 보고 있었다. 한국인 망신을 시키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았다.
이 아파트에는 평균 12년씩 줄곧 살아온 일본계가 대다수인데 일본의 어떤 회사는 주재원 상주 아파트로 계약을 맺을 정도로 상호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모범 입주자로 인식이 된 일본인에 반하여 그 청년들로 인해 한국 사람의 수준을 깡그리 바닥까지 보여준 것 같아 부끄러웠다.
수년 전 어떤 일본인이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내가 본 한국인’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인의 문화의식은 일본보다 50년 뒤떨어졌다는 혹평에 적이 불쾌했지만 저자의 의도는 한국인을 사랑한 나머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00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정화 운동을 펼쳤다. 한국인들이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아 미국사회에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길거리에 긴 담뱃대 물고 나오지 말 것, 속옷 바람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말 것 등등 무지를 깨우치려는 의식운동이었다.
이렇듯 우리민족도 일찍이 선각자들에 의해 의식개조 운동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1세기가 지난 오늘날 우리의 의식수준은 어디까지 얼마나 개선됐는지 짚어볼 때가 아닌가 한다.
한국 젊은이들의 몰상식한 단면을 보면 50년 뒤졌다고 말한 일본인의 진단은 후한 편이 아닐까. 그가 아직 맞아죽었다는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의 말에 수긍이 가는가 보다.
이은하 / 세계 기독신학대 음악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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