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주춤한 사이로 저녁이 온다
낮동안 빗속에 갇혀있던 개구쟁이 두엇
고샅으로 나와 고립된 정적을 흔든다
애 인 아 노 올 자
호방한 소리로 공중을 흔들고 다니는 뻐꾸기처럼
턱을 아래로 당기고 배 힘을 꽈악 준 사내아이 소리
애인아는 대답이 없다, 보송보송 흰 빨래 같은
거리와 거미줄 위 물방울의 정적을 가르는 애인아
그 흔한 까치조차 깍깍거리지 않는
저물녘, 쿵 쿵 태초의 소리다
그러고 보니 장맛비 잠시 개인 薄明의 거리에서
애인이라 불러도 흠 되지 않을 사람
만나고 싶은 시간이다 겹겹이 빗나가는 눈빛과
죄 없이 목소리 낮추거나 높여야 하는 시간 말고
어스름을 휘어잡고 흔드는 스스럼없는 누구
자꾸만 빠진 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예 인 아 노 올 자
최광임(1967~) ‘애인아 놀자’ 전문
뻐꾸기처럼 잠시 쉬었다가는 내뱉고 잠시 쉬었다가는 또 내뱉는, 사내아이의 ‘예인아’를 ‘애인아’로 듣고 싶은 마음이 어디 그대뿐이겠습니까. 더더구나 비 깜빡 그친 저녁 무렵이라니. 그런 날이면 애인을 잃어버린, 이 지상의 쓸쓸한 마음들은 한결같이 거리 쪽으로 슬며시 귀를 열어놓고 누군가의 목소릴 기다리는 걸. 아랫배에 힘 꽈악 주고 그리운 이름을 목청껏 불러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그런 날의 어스름인 것을.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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