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정문에서 나를 만나기로 한 약속
일찍 도착한 나는 서 있기도 무엇해 백화점 안을 둘러보는데 미리 와 있는 나는 혼자 뭔가를 먹고 있습니다
저녁이나 먹자고 한 건데, 뭔가 잘못됐나도 싶지만 어엿한 정각이 되고 나는 모르는 척 백화점 앞에서 나를 만납니다
따뜻한 것이 먹고 싶다며 골목을 돌고 돌아 나를 데리고 찾아간 식당, 당신은 태연하게 백반을 먹기 시작합니다
연거푸 술잔을 비우며 우적우적 가슴 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저 일은 무슨 일일까 생각합니다
그때 오래 전부터 당신이 나를 미워했다는 사실이 자꾸 목에 걸립니다
혼자이다가 내 전생이다가 저 너머인 당신은
찬찬히 풀어놓을 법도 한 근황 대신 한 손으로 나를 막고 자꾸 밥을 떠넣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병률(1967~) ‘저녁의 습격’ 전문
이 시를 읽다가 문득, 내가 나를 만난 지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날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로 바빴고, 엉뚱한 도시를 떠돌기 좋아했고, 뭔가를 먹어도 혼자서만 먹었고. 거울 속에서 수도 없이 부닥쳤지만 ‘안녕?’ 그 간단한 인사조차도 없이 헤어졌다. 생일날 제가 저한테 목걸이 선물을 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라도 알아챘어야 했을 것을. 하마터면 죽는 날까지 ‘나’하고 ‘나’는 각자 놀다가 갈 뻔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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