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명 목사(헤브론 펠로쉽 교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기쁨과 평안과 장래의 소망입니다(렘29:11)
우리의 마음의 소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찾습니다. 기도도 합니다. 때로는 교회일에 충성과 봉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자신감보다는 마음 한구석에 늘 불안과 두려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삶의 멍에가 이렇듯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성경은 까닭없는 고통은 없다고 했습니다.(잠26:2)
문제는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는 우리가 받았던 상처의 아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내 자신의 삶을 왜곡하고 불안의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거부(rejection)받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납깁니다.
관계가 깨어지면 상처가 남습니다. 그것은 원망과 미움으로 발전하고 쓴뿌리를 생산해 냅니다. 온갖 종류의 학대와 폭력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상을 깨뜨립니다. 그것은 두려움을 생산해내고 자신감을 잃게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삶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 원인들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깨어진 심령이 치유되지 못하면 우리 마음의 불안정적인 상태가 계속되고
성격적 결함과 장애를 가져오게 됩니다.
자신을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낮은 자존감을 갖게되고 결과적으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상대를 사랑하고 따뜻하게 품어줄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의 영혼에 사랑의 나무가 자리잡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증의 육신의 병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이 오월 아름다운 햇살이 눈부시는 날을 즐길 수 없는 것처럼 영혼의 상처와 상한 감정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였다 하더라도 그 영혼 깊은 곳에 자리잡고 우리를 조종하는 그 상처와 쓴 뿌리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환란과 고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애 3:33)
치유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의 삶을 회복케 하시는 치유자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미움대신 용서(forgiveness)의 나무를 심고
원망 대신에 이해(understanding)의 나무를 심고
숨기고 감추는 어두움의 나무 대신에 고백하고 드러내는(confess) 빛의 나무를 심으십시오
회복의 기쁨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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