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면 나는 프리웨이에서 한 시간은 족히 보낸다. 운 좋게 차가 없는 날은 40분에 골인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1시간을 오간다. 프리스쿨 종일반에 다니는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 들어가면 어지러운 풍경을 뒤로한 채 저녁을 만든다.
원래 있던 음식을 데우기도 하고, 나가서 먹기도 하지만, 주로 초스피드로 저녁을 뚝딱 만든다. 소스까지 만들어 오븐에 굽는 오븐 파스타도 30분이면 다 끝낼 수 있고, 파인애플 치킨 볶음밥은 20분, 그 사이 사이 부엌을 치우고 배큠까지 한다.
어떤 날은 배추를 절여놓고 저녁 먹은 후 김치를 담기도 한다. 정말 눈썹이 휘날리는 저녁시간이다. 아이 엄마와 직장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느는 건 팔 힘이고 속력인 것 같다.
예전에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했던 직장생활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내가 할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서 내 한 몸 예쁘게 가꾸고 엄마가 차려놓은 따뜻한 아침을 맛있게 먹고 출근하는 일. 직장 일이 끝나면 친구들 만나고 샤핑하고 영화보고 지친 몸으로 들어와 자던 일. 빨래, 다림질, 청소 모두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그 모든 일들을 다 해내고 있다. 물론 남편이 함께 하니까 혼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세세한 집안의 일들은 아무래도 내가 더 신경을 쓰니까 내 몸이 바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따로 청소하는 날이 없다. 그냥 보일 때, 눈에 띌 때 정말 ‘후딱 후딱’ 치워버린다. 아이가 놀고 나면 장난감은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고, 세수하고 나면 세면대를 닦고, 화장실을 쓰고 나면 바로 세척제를 뿌려 변기를 닦는다.
며칠 전 집에 왔던 후배 부부는 나의 이런 ‘정리’병을 보고 놀랐다.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누가 있건 없건 보이는 대로 줍고 갖다 놓고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아마도 수퍼우먼 컴플렉스가 아닐까 싶다.
일을 하면서도 집안 일에 소홀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잘 키워내고 싶다는 생각… 이런 스트레스가 나를 잠시도 가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치우고 정리한다고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 아니야… 더 치워야해… 하면서 전업주부면 더 잘할 텐데…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일을 하니까 제대로 못한다는 자기 위안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나를 합리화 하면서도 집안 치우느라, 아이 방 치우느라 아이와 앉아서 놀지도 못한다. 결국 내 수퍼우먼 컴플렉스로 덕을 보는 것은 집안밖에는 없다. 깨끗함을 즐기지도 못하고 정리된 방에 앉아 아이와 같이 놀지도 못하고 거기서 끝나버리게 된다.
“나는 수퍼우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면 삶이 훨씬 편안해질 것 같다. 그러면 집을 치우는 대신 아이와 놀거나 산책을 가거나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모든 일하는 엄마들이 느끼는 집안 일에 대한 스트레스, 이것은 아마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지 모른다. 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기, 일하는 엄마들을 전업 엄마들과 비교하지 않기, 내 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부터 이 세 가지를 꾹 믿어야겠다.
유정민 텐커뮤니케이션스 카피라이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