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미국민들의 점증되는 반전무드에 힘입어 상하 양원의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드디어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번 주 하원에서 먼저 218대208표로 1,240억달러의 전쟁비용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올 10월부터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를 시작, 내년 3월까지는 미군의 전투를 중단시킨다는 시간표를 포함시켰다. 상원에서도 곧이어 51대46으로 그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하겠다는 위협을 여러 차례 했음에도 이렇게 되었다는 점에서 여소야대의 현상에 직면한 대통령의 좁아진 입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이 법으로 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이 의회로 반송되어 이제는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2 이상의 의원들이 찬표를 던져야만 법이 되는데 다수당이기는 하지만 민주당에게는 그만한 숫자가 없고 공화당으로부터의 이탈표를 그 정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싫으나 좋으나 양당에서 협상할 수밖에 없다.
부시가 거부권 행사를 위협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의회에서 철군 날짜를 법으로 박아놓는 것은 군 통수권자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며 군사령관들의 권한을 시시콜콜 관장(micromanage)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1,240억달러의 군사비용 법안 가운데 사실 군비는 955억달러 정도이고 나머지는 펜티곤과는 관계없는 비용이라는 사실이다. 나머지의 일부는 민주당의 공약 중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 제대군인들과 아동들의 의료비 지원, 조류 인플루엔자 연구비, 농부들의 가뭄 구호비, 그리고 태풍 카트리나에 관련된 구호비 등이기 때문에 부시는 그것들이 의원들의 지역구 선심공세용이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도 지역 구민들의 복리에 관심을 안 가졌다가는 재선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터이니까 대통령의 영이 항상 서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화당 상원 부총무인 트렌트 롯 의원과 코크란 상원 예산위원회의 공화당 수석 의원을 들 수 있다. 둘 다 미시시피 출신이라서 카트리나 피해복구금 70억달러 배정에 찬성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고민이라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나 해리 리드 상원 원내총무 등의 도를 넘는 반전 발언으로 국민들 사이에 이라크 전쟁의 실패에 민주당이 기여한 것으로 결론 내릴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민주당이 월남전쟁의 실패에 대해 책임당으로 부각된 다음 대선에서 공화당 대 민주당의 승리 비율은 7대3이었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의 실패라는 멍에를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상책임은 물론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포함한 8명의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최초 공개토론을 보더라도 전혀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는 데니스 쿠시니치와 그래블 전 상원의원을 제외한 6명은 부시를 비난하면서도 이라크 전쟁비용 지불은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다. 전쟁비용을 반대했다가 패전의 주원인으로 찍힐 위험성 때문일 것이다.
부시로서는 4년 전 항공모함에 제트기를 착륙시키면서 이라크의 완수된 과업(mission accomplished)을 자축했던 기념일에 임박하여 전쟁비용 법안을 거부하는 거북스러운 장면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입장 난처는 3,400여명의 미군 전사자들의 유가족들의 슬픔이나 수십만으로 추산되는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들의 유족의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명분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는, 아니 적어도 그릇된 정보에 의한 전쟁을 시작했다는 역사의 낙인이 부시에게 찍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민주당이 내년 대선에서 성공한다 해도 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더 나아가 중동지역 전체가 지속적인 유혈사태를 직면할 것 같다는 우려가 지적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보통 문제가 아니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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