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가본 ‘사우스 센트럴’ - 일어선 한인들
사우스 센트럴. 그곳은 한때 한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의 무대였고, 삶의 터전이었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주7일을 일하는 고된 이민생활이었지만 꿈과 목표가 있어 보람을 느끼던 곳이었다. 그러나 1992년 4.29폭동은 꿈은 고사하고 삶의 의지마저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하나 둘씩 가슴에 한을 품은 채 그곳을 떠났다.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는 찾지 않을 것 같았던 그곳에 한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15년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종화합’의 가치를 가슴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만 남은 삶의 터전 남 원망 대신
“나 때문에 인종갈등 돼서야” 자각
커뮤니티 활동 적극… 정치력 신장
사우스 센트럴에서 한인타운으로 들어서는 길목인 제퍼슨 블러버드와 알링턴 애비뉴. 말끔하게 단장한 작은 샤핑몰에 리커 스토어가 눈에 띈다. 이곳이 지난 92년 4.29폭동 당시 불량배들의 방화로 잿더미가 됐던 업소라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건물주인 윤성환씨에게는 폭동의 기억은 희미해 져도 폭동이 준 교훈은 해가 갈수록 짙어진다.
윤씨는 4.29폭동 때 전 재산인 리커 스토어가 눈앞에서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살충동의 고비를 수십 차례 넘기고도 같은 자리에 가게를 새로 지은 것은 교훈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세상을 원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미국에서 뭘 하면서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내 가게를 찾는 손님을 짜증내며 대했던 것, 일을 즐기지 못하고 늘어놓던 불평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억울하기만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누군가 내 일터에 일부러 불을 냈는데도 주인인 내가 그 이유를 모른다는 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씨가 자괴감과 증오심을 뒤로하고 조각난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맞추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커뮤니티 활동이다. 윤씨는 “폭동 전에는 커뮤니티가 뭔지도 몰랐고 누가 모임에 나오라면 왜 내 시간을 쪼개서 모임에 나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커뮤니티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폭동 15년이 지난 지금 윤씨는 LAPD 사우스웨스트 경찰서의 상인번영회 모임인 ‘비즈니스 부스터’ 모임에도 꼬박꼬박 참여하고 각종 단체의 커뮤니티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있다.
사우스웨스트 경찰서의 브라이언 허 경관은 “경찰에서 신경을 쓰는 만큼 한인 업주들이 커뮤니티 모임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한인들이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우스 센트럴의 한인업주들 사이에는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코니 장씨 가족.
부모님이 1983년에 인수해 운영하다 4.29폭동 때 약탈을 당해 폐허가 된 제퍼슨 블러버드와 12가의 리커스토어를 이제는 딸인 장씨가 2대째 운영하고 있다. 가게 일보다는 사우스웨스트 경찰서 커뮤니티 후원회와 ‘비지니스 부스터’ 회장 활동으로 더 바쁜 장씨를 보고 남편은 “시의원 출마를 준비하느냐”고 농담을 던질 정도다. 장씨는 “폭동을 통해서 참 비싼 수업료를 내고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정치력이 주어지지 않고 나 하나로 한흑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지만 나 하나로 인종화합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대답했다.
20년이 넘게 한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장씨 가족은 지난 1998년 10년 동안 한 식구처럼 지낸 흑인 매니저 에디에게 한국여행을 선물로 선사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명영관, 코니 장, 윤성환씨가 4.29폭동 당시를 회상하며 사우스 LA지역의 한인상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돈 보단 마음을 투자해야”
사우스LA 투자이민자에 조언
90년대 후반부터 사우스 센트럴이 재개발 되며 이 지역에 새롭게 투자하는 한인들도 늘고 있다. 폭동 전부터 20년 가까이 사우스 센트럴을 일터로 살아온 한인 상인들은 새로 유입된 한인들이 15년 전 실수를 똑같이 되풀이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새로운 투자자들은 사우스 센트럴 특유의 정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베테런’ 업주들은 “사우스 센트럴 지역은 대형 슈퍼마켓이 없고 저소득층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오가며 들리는 단골손님이 리커 스토어 전체 매출의 80% 차지”한다며 “업주와 손님 사이에 유대를 형성하는 게 사업성공의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지역 주민들과 유대가 없으면 뜨내기손님에게 의지해 매출을 유지하기 힘들고 외부인이 운영하는 업소라는 인식이 퍼지면 지역 갱들의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사우스 센트럴에서 20년 가까이 희망을 지켜온 한인 상인들은 업소가 위치한 지역의 풍토를 모르면서 돈만 벌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돈을 투자하기 보다는 마음을 투자해야 이방인의 꼬리를 떨쳐버리고 진정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사우스 LA서 비즈니스 하려면 갱 전문가 돼야죠”
한인들에게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갱문제도 사우스 센트럴의 한인 업주들에게는 영업을 하는데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92년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흑인들의 시위와 소요사태가 한인 업소를 타깃으로 한 방화와 약탈로 치달은 것도 당시 LA를 양분하고 있던 두 갱단 블러즈(Bloods)와 크립스(Crips)가 LAPD를 상대로 일종의 복수전을 전개할 것에 합의하며 불거진 것이다.
장씨는 “당시 사우스 센트럴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한인들은 커뮤니티 돌아가는 데는 무관심해서 어떤 갱들이 라이벌 관계인지 왜 싸우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커뮤니티 깊숙이 곪아 가고 있던 인종갈등을 외면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것이 한인들이 폭동의 피해자가 된 또 다른 원인”이였다고 회상했다.
장씨는 경찰이 주최하는 치안강화 모임이나 커뮤니티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다 보니 이제는 갱들의 알력관계까지 파악하고 있어 동료 상인들에게 갱 범죄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줄 정도다.
한인 업주들은 사우스 센트럴에서 폭동 전후로 뚜렷한 변화가 있다면 갱 문제의 확산이라고 입을 모은다. 폭동 후에 흑인 중산층이 LA외각으로 이주하고 그 자리를 라티노들이 채우면서 저소득층 흑인들과 라티노들 사이에 형성된 갱 라이벌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리커 스토어 운영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사우스웨스트 경찰서 제임스 그레이그 서장은 “갱들이 마약밀매의 접선장소나 영역다툼의 분기점으로 리커스토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갱을 수사하거나 단속하는 경찰이 리커 업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글 김연신 · 사진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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