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0대에 아이 낳는 고령의 명사들, ‘SOD(재출발 아빠)’의 명암
활기 찬 노후 즐기지만 ‘갑작스런 죽음 공포’ 일상에서 감수해야
1996년 뉴욕에서 ‘크리스마스 캐롤’ 리허설을 하고 있던 배우 토니 랜달은 곧 아버지가 된다는 설레임에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7세였다. “아이가 15세가 되면 밖에 나가 함께 공놀이를 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내 나이요? 겨우 90세밖에 안될꺼예요!”라고 그는 유쾌하게 말했었다.
그러나 랜달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2004년 7세짜리 딸 줄리아와 6세짜리 아들 제퍼슨을 남긴채 84세의 나이로 숨졌다. 다행히 아이들 곁에는 33세의 젊은 엄마가 있었다.
<지난 97년 갓난 딸 줄리아를 안고 가는 배우 토니 랜달과 아내 헤다. 당시 78세였던 그는 2004년 사망했다>
77세의 랜달이 아빠가 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남들은 벌써 은퇴하고도 지났을 나이에 아이를 갖는 고령아빠들의 이야기가 화제를 모았었다. 당당하고 자랑스럽다는 한 아버지는 자신들에게 SOD(Start-Over Dad 재출발 아빠)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96년 랜달을 비롯한 일부 명사들이 SOD가 되었다는 뉴스는 갖가지 호기심 섞인 반응을 불렀다. 아이가 차도에 뛰어들어도 늙은 아빠가 무슨 힘이 있어 구하겠느냐는 빈정거림도 있었고 도대체 아이가 크기도 전에 죽을 수 있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그 나이에 애를 낳다니, 너무 이기적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당시 고령의 새 아빠들과 자녀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뉴욕에 거주하는 심리치료사 사이 쿠퍼스미스는 10년전 어린 딸 앤디가 ‘아빠가 계속 살 수 있는지 알고싶다’고 진지하게 묻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그는 “아빠도 그러기를 희망한단다, 네가 숙녀로 자랄 때까지는”이라고 대답했었다. 그 희망은 딸이 16세, 아빠가 75세가 된 지금까진 잘 이루어졌다. “앤디가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내가 감수해야할 현실이지요.”
새로운 경향이니 관련 연구는 많지 않지만 아빠의 나이가 자녀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차츰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연구들에선 고령 아빠의 자녀들이 자폐증, 조울증, 왜소증 등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남성의 손상된 정자가 원인일 수 있다고 일부 학자들은 지적한다.
고령아빠의 가장 큰 장점은 이제 더 이상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10세 쌍둥이 아들의 아버지인 73세의 앨런 홉슨은 하버드의대 정신과 교수였다. “과학자로서 내가 이룬 성공은 내 첫 번째 아이들을 소홀히 한 대가로 얻은 셈이지요. 이제 은퇴했으니 쌍둥이들과는 함께 지낼 시간이 충분합니다”
자녀들의 느낌도 명암이 뚜렷하다. 18세 파멜라 로우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모튼 로우는 69세였다. 이제는 벗어났지만 어렸을 땐 할아버지냐고 묻는 꼬마친구들의 호기심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가장 괴로운 것은 자신들의 부모라 해도 좋을만큼 나이 차이가 큰 이복형제들과 아버지의 사랑과 재산을 놓고 다투어야하는 상황. 전처소생의 성인 자녀들에게 고령 아빠들은 너무 무책임한 이기주의자로 여겨져 처음부터 감정이 좋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같은 아빠인 75세의 심리치료사 사이 쿠퍼스미스가 16세 딸 앤디를 정겹게 바라보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버지 자신 못지않게 자녀들에게도 일상의 한 부분이다. 17세짜리 딸 몰리의 아버지인 84세의 모우 벨린이 3년전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깨어난 후 머리 속을 채운 단 하나의 생각은 오직 ‘몰리’였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한다는 자책감에 시달렸지요” 그는 요즘도 새벽 6시30분이면 헬스클럽에 나가 체력을 다지지만 딸 몰리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아빠, 오늘 건강상태는 어때? 1에서 10중 어디쯤이야?”라고 빠짐없이 체크한다.
어떤 의미에서 재출발 아빠들은 반 체념상태에서 산다. 포기하지는 않지만 필연적인 빠른 죽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랜달이 꿈꾸었던 것처럼 87세의 모튼 로우도 이제 겨우 18세인 딸 파멜라와의 내일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내가 90세까지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겁니다. 그애가 대학 졸업하는 걸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애 결혼식에 손을 잡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폴 매카트니, 케니 로저스도 ‘재출발 아빠’
SOD그룹에 합류하는 명사들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60세에 아들을 얻은 로드 스튜어트, 61세에 딸을 낳은 폴 매카트니, 65세에 쌍둥이 아들의 아빠가 된 케니 로저스…2004년 63세에 아들을 낳은 배우 조지 라젠비는 이듬해 다시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아 노익장을 과시했으며 63세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도 요즘 곧 아빠가 될 기대에 들떠있다.
SOD의 프로필은 대개 비슷하다. 부유한 전문직종사자로 노후에도 자녀를 부양할 능력이 있는 남성들이다. 엄마되기를 원하는 젊은 아내들의 뜻에 따라 아빠가 된 경우도 있고 어린 자녀가 자신들에게도 새롭고 활기찬 삶을 살게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아빠가 된 사람도 있다.
SOD 인구가 크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2004년 미국내에서 태어난 신생아중 아버지가 60세 이상인 경우는 2,127건에 불과했다. 1994년엔 2,534건으로 매년 전체 출산 중 0.1%를 넘지 않는다.
그동안 40~50세엔 아빠가 되는 남성은 드물지 않았다. 중년에 재혼한 잿빛 머리칼의 아기 아빠는 꽤 있었지만 하얀 백발의 아기 아빠는 확실히 새로운 현상이다.
<뉴욕타임스-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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