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보리사 25일 개원법회…주지 형전 스님 ‘불변불심’ 희망인사
“수레가 멈췄을 때 수레를 때려야 되느냐 소를 때려야 되느냐…
돈 잘 벌고 자식 잘 키워도 행복해지지 않고 셰파트 같은 삶…”
증명법사 설조 큰스님, ‘회양-마조 벽돌고사’ 등 곁들이며 참행복 법문
얼추 방석 같이 생긴 것, 전혀 방석 같지 않은 것, 다 깔아도 방석이 모자랐다. 앞 방석에 앉으면 턱이 거의 법단에 닿을 듯이, 뒷 방석에 앉으면 등이 거의 벽을 밀칠 듯이, 그렇게 촘촘히 앉아도 자리가 모자랐다. 방석 없이 앉아도 자리가 모자랐다. 출입구에 자리를 깔고 자리를 만들어도 자리는 모자랐다. 부엌 맨바닥에 겹치기로 앉아도 자리는 모자랐다. 어린 불자들은 별수없이 옆 방에서 놀게 했다. 청년 불자들은 입구 끝자락에 서서 목을 내밀고 안쪽으로 눈 안테나를 들이밀거나 그나마 여의치 않아 안쪽으로 귀 안테나만 돌려놓고 족히 두어시간동안 뻗치기를 하기도 했다.
자리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불심은 한없이 남아돌았다. 넘쳐흘렀다.
25일(일) 오후 2시30분쯤부터 약 2시간동안 이어진 오클랜드 보리사(주지 형전 스님) 개원법회는 앞뒤양옆 걸치작거려 엎드려 절 올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약 100명이 꽉 들어찬 가운데 열렸다. 육법공양에 이어 삼귀의와 찬불가가 울려퍼지고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반야심경이 법당을 경건하게 적셨다.
주지 형전 스님은 이날자 보리사 소식지 법문을 통해 “2004년 12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참으로 많은 기대와 상상을 가지고 미국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지금도 그 희망은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희망을 얘기했다. 희망은 소명의식의 다른 이름이었다. “1세대들은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해왔습니다. 지금 우리 불자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2세들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좋은 부처님 말씀을 우리 자식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이것을 풀어보고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보리사의 방향입니다.” 이를 위해 “배워가는 신도교육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오늘(25일)부터 불교교양대학을 개원합니다”라고 희망소식을 알린 스님은 “한국경제보다 늦을지 모르지만, 남방국가나 티벳불교의 포교는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라고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노력을 다짐 겸 역설했다.
박재영(법명 선혜) 신도회장은 보리사의 오늘이 있기까지 발자취를 시간의 흐름 따라 더듬은 뒤 “(육조사 시절) 처음 한두명으로 시작한 법회가 이제는 거의 30명에 이르는 법회가 되었습니다. 스님들께서는 청소년 포교와 북가주 승가회 일에도 적극 참여하시어 보리사뿐만 하니라 북가주 불교인들 전체를 위하여 매진하시고 계십니다”라며 앞으로 걸어갈 길이 멀지만 지금껏 걸어온 길만 해도 감개무량한 걸음이었음을 비치며 “불교학교건립과 미주포교의 원대한 서원이 이루어지도록 저희 보리사 신도들은 일체 단결하여 스님들을 보좌할 것”을 다짐했다.
이윽고, 이날 개원법회의 증명법사인 SF여래사 회주 설조 큰스님이 법상으로 향했다. 좀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수행처에 머물다 형전 스님과 돈오 스님의 청법에 먼 걸음을 한 스님은 인자한 미소 속에 좌중을 둘러보며 “(8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시작할 때는 이것 반밖에 안됐다”며 새 출발 두 스님과 신도들을 쓰다듬고는 법문을 이었다.
“신라의 왕자(성덕왕의 셋째아들)로 출가해 당나라로 갔던 무상(無相, 684~762) 스님의 제자가 마조(馬祖, 709~788)라고 하는 스님인데, 이 마조 스님이 수행하고 계실 때…”
저 유명한 ‘벽돌로 맺어진 남악회양(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 선사와 마조 스님의 인연’ 이야기였다.
“마조 스님이 부처가 되겠다고 열심히 참선하는 장소에 하루는 회양 스님이 가셔서 벅벅 소리가 나도록 벽돌을 갈았어요. 마조 스님이 나와보니 방장 스님(회양)이 벽돌을 가는 겁니다. ‘아니 벽돌을 갈아서 어디다 쓰시려고 가십니까.’ ‘나는 이것을 갈아갖고 거울을 만들려고 그래.’ 옛날에는 구리를 잘 연마해서 거울을 만들고 했지만 흙으로 만든 벽돌로 거울을 만든다니 기가 막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마조 스님이)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든다고 그러십니까’ 이랬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회양 스님 하시는 말씀이 ‘어떻게 앉아서 참선만 하면서 성불한다고 그러냐.’ 마조 스님이 ‘앉아서 성불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으니까, 회양 스님이 “비유를 들어 얘기를 해주마. 수레, 소가 끄는 수레를 끌고갈 때 수레가 안갈 때는 수레를 때려야 되느냐, 소를 때려야 되느냐…”
마조 스님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굳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다는 듯 그 일화를 거기서 탁 멈춘 설조 스님은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라고 잠시 뜸을 들인 뒤 법문의 꼬리를 틀어 80년대 초 LA 관음사에서의 카운슬링 경험담을 풀었다.
30대에 과부가 된 보살이 두 아들 잘 되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뒷바라지를 했는데, 그래서 큰 아들이 의사가 되고 부자동네 베벌리힐스에 살게 되고 성공했지만, 주일에 절이라도 갈라치면 아들 부부는 세미나다 뭐다 해서 후딱 나가버려서 말 안통하는 손주들과 함께 집 지켜야 되고, 더군다나 주중에는 말 안통하는 손주들마저 학교에 가버리고 없고, 버스도 안다니는 부자동네라 집 밖에도 못나가고, “그래서 저는 셰파트가 됐습니다”라고 울먹이더란 줄거리였다.
스님은 “부인한테 사랑한단 말도 못하고 부인은 남편을 잘 살피지도 못하고 그저 자기네들이 목적한 돈을 벌었으나 행복해지지 않고…아니, 없을 때는 간간이 행복한 시간이 있는데 그런데 막상 여유가 생기면 아내의 약점도 보여지고 남편의 약점도 보이고 하는” 본말이 전도된 중생심 중생살이의 급소를 찌른 뒤 겹치기 물음표에 이어 모두의 성불을 기원하는 것으로 법문의 끝을 맺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기 소망은 다 이뤄졌는데 자기는 셰파트가 됐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참선한다고 성불을 하느냐 견성을 하느냐, 수레가 멈췄을 때 수레를 때려야 되느냐, 소를 때려야 되느냐, 오늘 말씀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여러분 다같이 성불합시다.”
설조 큰스님 법문 뒤에는 이수잔 법우의 피아노 연주, 가릉빙가 중창단의 찬불가 릴레이가 펼쳐졌다. 특히 석탄일 연합 봉축행사 합창지도를 위해 와 있는 정율 스님이 즉석 요청으로 찬불가를 부르는 동안 여러 불자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이 일 저 일로 울고 또 울어서 이제는 눈물샘이 바싹 메말랐을 것 같은 노보살들의 주름진 뺨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이 지긋한 처사들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하게들 웃었다.
이날 개원 법회에는 설조 큰스님, 정율 스님 이외에도 북가주 불교마을 촌장격인 수원 스님(여래사 주지)을 비롯해 보광 스님(SL전등사 주지)과 원산 스님(전등사 국제포교사), 여준 스님(SF불광사 주지) 등이 참석해 보리사의 발전을 축원했고, 북가주 재가신도 좌장격인 김정현 거사(서니베일 정원사 신도회장) 등 다른 사찰의 많은 불자들이 자리를 함께해 도반의 정을 나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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