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거의 1년만에 골프채를 손에 잡았다. 작년에 아들이 태어난 후 처음 잡는 골프채였다. 필드에 나가는 것은 둘째치고 연습장 한번 갈 여유가 없었던 차에 타주에 있는고객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중요한 만남이 있으니 필드에 나올 수 있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사업상 혹은 영업을 뛰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절감하겠지만 이러한 연락이 올 때 여간해서는 거절하기 힘들다. 그래서 참석하겠다고 약속해 놓았으나 그 때부터 사무실에서 좌불안석이 된 것이다. 1년가량 골프채를 잡아보지 않았고 그렇다고 원래 썩 잘치던 실력이 아닌지라 이러다가 망신살에 민폐만 끼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며칠 남지 않은 골프 약속 때문에 야근이 계속되는 일정 속에서 짬을 내 사무실 근처 골프 연습장을 향했다. 타석에 들어서 공을 치기 시작하니 아니나 다를까 공이 사방 팔방으로 날아가고 굴러가기 시작했다. 참 막막하고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그 순간 아이가 태어나고 지난 1년간 이렇게 연습 한 번 해볼 기회가 없이 정신 없이 바빴나 싶으면서 스스로가 측은해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측은함은 곧 하던 공부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변신한 와이프에게로 옮겨갔다. 도와줄 주변 사람이나 가족들도 없이 혼자서 애 키우고 살림하고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학업도 잠시 중단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하면서 가정을 지키고 있는 와이프의 희생적 삶에 비하면 1년간 공 한번 쳐볼 기회 없었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사치에 가깝게 느껴졌다.
주변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고 가사를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것 같다. 더구나 요즘 같이 여성의 사회 참여도가 높고 여성도 자기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요즘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정 경제를 유지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육아와 가사노동 뿐 아니라 맞벌이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젊은 부부들 간에 육아와 가사노동의 분담을 두고 부부간의 마찰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분쟁에는 커리어와 가사노동을 동시에 잘 해내는 ‘수퍼맘’ 이미지가 아름답게 각인되면서 여성들에게 ‘수퍼맘’이 되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일조하는 듯 싶다.
그리고 ‘수퍼맘’ 이미지의 근간에는 가사노동은 잉여를 생산하지 못하는 노동이라는 가사노동의 소외현상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일찌기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차별의 근간에 여성노동-가사노동-사적영역이라는 고리가 있다고 보았다. 즉 여성-가사노동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경제적’인 노동으로 치부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이러한 관념이 가사노동의 분담, 수퍼맘 이미지의 상품성이 지속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가사노동도 그 어느 노동에 못지 않게 귀중한 노동이라고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없이는 직장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이해가 불완전할 것이며 전업주부로서 본인의 커리어조차 희생하고 가정을 위해 일하는 전업주부들을 소외 당하지 않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가사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지 않고서는 부부간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는 전업주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직장여성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한신> 변호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