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으로 창조한 도저한 묵(墨)의 세계
1. 태초에 여백이 있었다.
화가 이일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셀 수도 없이 많은 선들의 상승과 하강, 그리고 이 길항이 창조하는 공간의 분할에 의해 변주된다. 태초에 여백이 있었다면, 화가 이일은 그 여백이 창조하는 ‘텅빔’과 ‘공포’를 선으로 메우고 다스린다.
일찍이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는 이 ‘텅빔’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공포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잘 설명했다. 보링거에 의하면, 대지와 바다와 강물이라는 광할한 자연 앞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내적 불안감의 ‘추상 충동’과 ‘감정이입 충동’의 재현이 바로 예술이다. 시대와 공간의 다양성에 따라, 혹자는 돌을, 혹자는 물감을, 그리고 화가 이일에 이르러서는 볼펜을 사용하여 이 ‘충동’을 재현한다.
그렇다. 이 지점에서 꼭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화가 이일은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도구 중에 구태여 볼펜을 선택한 것일까?
볼펜이 무엇인가? 잉크와 펜, 먹과 붓이 재현하던 개인적이고 항구적인 전근대적 세계를 대치한 현대문명의 총아,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고전적 필기구가 영구성, 귀족성, 희귀성, 개인성 등과 같은 고급문화의 은유라면, 볼펜은 그것들의 은유적 이항으로써 일회성, 서민성, 대중성, 보편성 등을 뜻하는 바, 가장 일상적인 동시에 현대인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볼펜 그림을 그렸다면 다들 냉소적으로 대했을 것”이라는 이 화백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그가 키취(kitsch)로 오인받기 쉬운 볼펜 그림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터. 무엇이 그로 하여금 볼펜화가로서의 길을 선택케 했던 것인지, ‘선의 컨셉화’에 대한 고민과 ‘아시안 문화의 독창성’에 대한 궁극적 성찰이 맞물리는 지점, 70년대 말-80년대 초반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찾아 볼 수 있을 법하다.
2. 출발점이자 도달점으로서의 ‘선’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화가 이일이 도저하게 추구해 오고 있는 ‘선의 컨셉화’의 진원지는 뉴욕의 대학원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말에서 80년대 초. 이 시기는 이일에게 있어 프린트 메이킹과 페인팅을 가로 지르며 아크릴화 제작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탐색하는 일종의 ‘실험기’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실험적 시기를 통해 이일은 선에 대한 추구와 성찰에 기법적 다양성 뿐만 아니라 미학적 깊이까지 더하게 됨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와 같은 초기 에칭(Drypoint etching)작품을 통해 터득한 세밀하고 긴장된 선의 세계에 대한 경험이 , , 등을 통해 더욱 유려하고 자신감에 찬 국면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똑똑히 볼 수 있다.
인간의 시각은 선이라는 기하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면을 분할하고 지배한다. ‘텅빔’으로 존재하는 백색의 면은 인간의 손길, 즉 선이 닿으면서 가득 차오르고, 거대하게 팽창하고, 촘촘하게 주름 잡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선이란, 인간 정신의 고매한 푯대이자 자연에 대척하는 인간 의지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들의 상승과 하강, 겹침과 충돌을 통해 면이 분할되고, 분할된 면들 사이로 주름이 탄생한다.
결국, 화가 이일의 볼펜은 선들을 창조하는 현대인의 창조적 손이자 현대문명의 은유로써, 볼펜의 검은 잉크가 만들어낸 선과 주름들 사이에서 미학적 의미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거듭, 왜 볼펜인가? 이 질문은 왜 그의 작품들은 검은색 일색의 모노톤인가라는 질문과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화가 이일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제 ‘검은색’의 의미를 알아야 할 차례다.
3. 검은색, 그 속에 숨은 뜻을 새기다.
인간에게 세계가 불가해한 것이듯, 검은 색 또한 불가해한 무엇이다.
박용숙의 <동양서에서 한국서까지>를 읽다보면, “현(玄)은 검은색(黑)인데 그 검은 색은 빨간색(赤)을 내포하고 있으며 다시 그 빨간색은 노란색(黃)을 내포하고 그러한 유원한 색채가 곧 현(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묵색(墨色) 속에 빨간색이나 노란색이 포함되어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묵(墨)은 존재의 근원적인 것, 즉 실재(實在)를 상징하는 색채라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은옥재(殷玉裁)의 설문해자(設文解字)의 한 부문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검은색은 바로 ‘존재의 근원’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화가 이일의 검은색은 바로 인간 일반에 대한 존재의 근원, 나아가 화가 개인의 존재론적 근원에 대한 해답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화가 이일이 창조해낸 검은색은 문인화와 서예의 검은색, 즉 현(玄)이자 묵(墨)의 세계와 닮아 있다. 즉흥적인 작품 제작 과정이 그러하고, 기표와 기의가 자유롭게 넘나들고 상호소통하는 그림 자체가 또한 그러하다.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거나, 색의 농도로 대상의 음영을 표현하거나, 덧칠로 수정하지 않는 그의 제작 기법은 선비가 난을 치듯 율동적이면서 아름답고, 작품은 수많은 의미들로 가득차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서예와 풍경화 그리고 섬유와 공예의 전통이 함축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는 미술 평론가 에드워드 레핑웰(Edward Leffingwell)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화가 이일의 검은색이 수묵화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누구나, 화가 이일의 작품 속에서 조용하게 엎드린 산과 유려하게 굴곡진 강과 소복하게 내려앉은 마을을 본다. 그의 작품 속에는 ‘압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가쟈고 흘너도 년다라 흐릅디다려’하는 김소월의 절창이 담겨있다. 왜냐고 묻는가? 가서 보라. 그의 작품세계는 볼펜으로 그려졌으나 묵으로 그린 듯하고, 추상이나 구상의 이미지가 숨어있음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4. 클리셰와 새로움의 사이.
어쩌면 문학도, 미술도, 영화도, 심지어 건축조차도, 작가가 제각기 갇힌 우물 밖의 하늘을 재현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들이란 방황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채 불꽃처럼 열렬히 살아가다가도, “무엇인가 찾았다”하고 안주하는 순간 클리셰(상투성)의 덫에 걸리게 되고 마는 것일 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부러움(반 세기 동안 작품활동을 했던 작가 야스나리는 <설국>을 통해서 ‘삼월의 살얼음처럼 투명하고 병적인 미학’과 시적 언어의 극치점을, <산소리>를 통해서는 한없이 불투명하고 몽환적인 서사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클리셰에 빠지지 않는 작가정신을 볼 수 있다. )을 화가 이일의 작품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느끼게 되기를, 그리고 볼펜이라는, 아주 미국적인 도구로 그리는 한국의 마음이 한낱 꿈이 아닌 끊임없이 발전하는 풍요로운 세계가 되길 빌어 본다.
현대인들은 결코 사색하려 들지 않는다. 한 장의 그림을 마주하고 그림이 이끄는 대로 수많은 의미의 언덕들을 지나 산책하고자 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를 아주 오래 사로잡고 있는 이미지, 그것은 칼라보다 흑백이어서 더 깊고, 아름답고, 황홀했다. 아마도, 화가 이일이 발견한 검은색의 깊이, 한국적 묵(墨)의 세계는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30년 전, 그가 품고 왔다던 그 “날카로운 칼 한자루”가 언제까지나 녹슬지 않고 살기등등하게 번득이기를, 그리하여 그 칼이 끊임없는 실험과 창조의 담금질에 더욱 강하게 벼려지기를 빌어 본다.
<정영화 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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