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그대는 아름답다 / 강학희
원시遠視인 내 눈은 많은 경우 사물을 생각으로 본다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지만
안경 없이 선명하지 않은 물체
줌인zoom in하기를 고집한다
희미한 것에서는 단내가 난다
무언가 아른아른하면 생각의 조리개 오므렸다 졸였다
실눈으로 보는 동안 사물들이
정겨워지고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추억의 실타래 풀리며 사물, 사물 세상 덧눈 없이
마음의 눈으로 만나지는
먼 그대는 늘 아름답다
저 만큼에서도 단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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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 따로 사랑 따로(수필)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사랑스럽고 예쁘게만 보인단다. 못난 미물도 그러할진대 인간의 자식 사랑이야 오죽 하겠는가? 하지만 어릴 땐 미운 짓도 예뻐 보이지만 자라면서 개구쟁이 미운 일곱 살을 거치고 사춘기 반항기를 거치면서 자식은 미운 짓들을 해간다.
왜 자기 자식 흉을 모르겠는가? 인간이기에 단점이 있고 그 단점이 눈에 드러나는 것인데 어찌 무조건 예뻐만 보일 수 있나? 나무라고 가르치며 어느 땐 싸워가며 지내는 것이 부모 자식 지간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결혼까지 하고 나면, 마음대로 야단칠 수도 없고 오히려 내가 야단을 맞는 때도 많다. 논리적이고 정당성 있는 이론을 내세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올 땐 사실 그 말이 다 맞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그 정당성과 논리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나이로 터득한 까닭에 나와 그와는 가끔 티격태격 다툰다. 다투고 나면 밉고 섭섭하지만 그것은 잠깐이고 어쨌든 아직도 사랑스럽고 듬직한 아들이니 좋을 수 밖에.
그런데 이제는 그의 아내가 있으니 예전하고는 좀 양상이 달라졌다. 이젠 하나 보태서 둘의 흉과 자랑이 있으니 말이다. 나이든 사람들이 모여 앉아 얘기하다 보면 아들 흉 며느리 흉, 동병상련이다. 그 착하고 효자던 아들이 장가 가더니 제 마누라만 알고 처갓집만 알고 제 부모는 우습게 안다고 불만, 며느리는 도통 제멋대로이고 무슨 때가 되어도 안부전화 하나 제대로 없다고 불만, 돈은 잘 벌어 결혼해 2년 만에 집도 사고 좋은 차도 샀는데 집안 살림은 엉망이라고 불만. 어쨌든 모두다 한 두 가지 불만은 있다. 그러나 제 남편 위하는 게 자기가 자식 위하는 것보다 더 잘한다고 자랑, 야무지고 똑똑해서 회사의 중견간부라고 자랑, 직장 다니면서도 온 집안이 반짝 반짝 유리 같다고 자랑도 가지가지이다. 그러니 흉 각각, 사랑 각각이라는 옛말이 생각날 수 밖에.
마켓에 장을 보고 있는데 어느 분이 다가와 말을 건다.
“며느리 잘 얻으신 모양이에요.”
“예? 어떻게 아세요?”
“글에서 보면 며느리를 은근히 자랑하시던데요.”
“아, 네 참 착하고 시키는 것도 잘 배워서 해요.”
“그러면 됐죠. 요즘 애들 시키는 것 잘하면 되요. 시어머니 말 우습게 들어 넘기는 애가 얼마나 많은데요.”
가끔 글의 소재로 집안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자의든 타의든 사람들이 내 며느리를 많이 알게 됐다. 물론 얼굴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와 안면이 있든 없든 어쩔 땐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한참 신나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면 내가 자랑을 하고 있는 건지 흉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그래, 흉도 자랑거리도 같이 갖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건 내 아이들 뿐만이 아니고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들이 아니겠는가? 흉허물 보다는 자랑거리를 미움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생각해보면 매사가 순조롭고 쉬워진다. 내 속으로 내 자식도 내 맘에 쏙 들지 않는데 어찌 며느리가 100% 맘에 들 수 있겠는가? 항상 다독거리고 가르치고 사랑으로 이해해야지. 내가 100점짜리 부모가 못되면서 그들에게 100점을 요구하는 건 모순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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