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바인에서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조경업을 하던 40대 한인 남성이 히스패닉 인부의 삽에 맞아 절명했다. 가정집 뒷마당의 조경 공사를 하던 중 한인업주가 인부의 작업태도를 꾸짖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사건이 보도되자 자영업을 하는 많은 한인들은 가슴 아파했다. 청소, 봉제, 건축, 운송 등 히스패닉 노동력에 의존하는 업주들은 한 순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폭력이 난무하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직접 경험했거나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 온 후 바로 한인타운에 정착한 한 후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에 왔는데 ‘미국사람’은 구경하기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LA 한인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마켓이건, 식당이건, 직장이건 가는 데마다 만나는 타인종은 히스패닉이다. 종업원으로, 고객으로, 혹은 가정부로 우리 생활에 씨줄, 날줄로 엮여있는데, 그 관계들이 아직 미숙해서 이따금 파열음이 터진다. 기본적으로 사고방식이 너무 달라서 생기는 충돌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우리, 오늘을 즐길 뿐 내일 걱정이 없는 그들, 그 사이의 괴리가 한인업주들을 종종 속 터지게 한다.
멕시칸들의 마냥 느긋한 생활태도는 우리뿐 아니라 미국인들도 이해를 못한다. 미국 관광객이 멕시코에 가서 느끼는 게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살까”싶은 답답함인데, 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한 그링고(미국인)가 멕시코 해변을 거닐다 보니 동네 어부가 아직 대낮인데 그늘에 누워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아니, 왜 고기를 잡지 않는 거요? 고기를 더 잡으면 돈을 더 벌수 있을 텐데”하고 말했다.
“그래서요?”- 어부의 심드렁한 반응이다.
“그럼 사람을 한명 고용해 둘이 고기를 잡으면 더 돈을 벌수가 있을 것 아니요”
어부의 반응은 또 “그래서요?”이다.
답답해진 그링고-“그렇게 되면 배를 한척 더 사서 두 사람이 두 배에서 고기를 잡으면 돈을 엄청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요”
어부는 또 말한다 - “그래서요?” 짜증이 난 그링고의 마지막 설득 - “그렇게 되면 어부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고 당신은 여기 해변에 앉아서 맥주만 마셔도 될 것 아니요”
어부는 마시던 맥주를 시원하게 한번 들이키더니 그링고에게도 권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번 후 맥주를 마실 것인가, 맥주 한병 살 돈만 있으면 지금 맥주를 즐길 것인가 - 한인 고용주와 히스패닉 종업원 간의 마찰은 많은 경우 여기서 출발한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는 고용주에게 “오늘만 날인가. 내일하면 되지”식의 불성실한 태도, 봉급 타서 주머니에 돈 생기면 다음날 무단결근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용납하기 어렵다. 거기에 인종적 편견, 언어장벽 등이 합쳐지면 불화의 위험은 상존한다.
하지만 한인업주들이 받아들여야 할 분명한 현실은 이들 히스패닉 인력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히스패닉 종업원들과 오래 일해 온 업주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인력운용의 공통점이 있다. 인력관리는 냉정하게, 개별 종업원에게는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다. 우선 작업태도가 나쁜 인부 때문에 열 받고 속 끓일 필요가 없다. 히스패닉 직원 30여명을 데리고 카펫 업체를 운영하는 한 한인업주는 말했다.
“일을 제대로 안 하면 다음부터는 그 사람에게 일을 안주면 됩니다. 감정이 아니라 일로 규율을 잡는 것이지요”
아울러 병행돼야 할 것은 인간적인 대우이다. 자바시장에서 라틴계 종업원과 15년째 같이 일하는 한 업주는 “종업원에게 잘 하면 그 덕이 내게로 돌아온다”고 했다.
“주인이 종업원에게 잘 하면 종업원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하지요. 매상이 오를 수밖에 없어요”
많은 한인 자영업은 히스패닉 노동력과의 이인삼각이다. 마음이 급하다고 혼자 달려가서 될 일이 아니다.‘라피도, 라피도’(빨리빨리)가 입에 밴 한인 고용주들이 ‘마냐나’(내일)가 몸에 밴 히스패닉 종업원들과 얼마나 이인삼각을 잘 해내느냐가 성공의 비결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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