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예선 소설가
“그토록 상냥하고 다정한 네가…, 이런 면이 있었다니…”
교장은 한숨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만든 도서관이라고…, 네가 부수어도 된다는 거니? 조회 시간부터 학교 전체가 너를 도왔는데…, 이런 행동을 네가 할 수 있는 거니?”
교장의 한숨은 눈물까지 머금었다.
“그래, 말좀 해보거라. 잘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거냐?”
“죄송합니다. 잘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명화를 감상한 것이 무조건적인 퇴학을 당하는 것에 동의를 못합니다. 더구나 빵집도 못가게 하고 머리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런 규율들 평소에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의 규칙은 이랬다. 1학년은 단발, 2학년은 고무줄로 묶은 짧은 포니테일, 그리고 3학년은 머리를 몇개로 땋아야 했다. 그러니까 머리만 보아도 1,2,3학년이 멀리서도 구별되었다. 뿐인가, 학교 정문에는 규율 부장들이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옷차림 등을 검열했다. 두고두고 비참했던 일은 비를 맞으며 항일 데모를 할때의 기억이다. 학도 호국단 간부들은 솔선 수범으로 혈서를 써야 자격에 합당한듯한 분위기. 아파서 손가락을 깨물 수 없었던 소대장인 나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곤혹을 치루었다. 중대장이었던 은영은 그 얌전한 애가 마구 손가락을 깨물어 한동안은 그애가 징그럽고 무서워서 피해다니기도 했다.
말을 하고 나니 웬지 가슴이 후련했다. 동시에 도서관은 다시금 원상 복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수고 있었던 나를 스스로도 알수가 없었다. 규칙을 어긴건 바로 나였으니까.
“교장 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배려는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파괴하려던 것 다시금 사과를 드립니다. 고쳐놓고 떠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정혜성! 어딜 떠난다는 거냐?”
나는 다시금 몸을 돌려 교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픔에 잠긴 얼굴이 되어 나를 향해 있었다.
“서울로 가서 미국 갈 준비를 해야지요.”
슬픈 교장의 얼굴을 마주 대하기가 나도 슬펐지만 내친 김에 또 한마디했다.
“미국?”
“네. 미국가서 공부도 하고, 보다가 만 <애수>도 보고…, 영화좀 실컷 보았으면 해서요.”
“앉거라!”
끝내 한마디도 못한 수미가 나를 앉혔다.
“너는 내가 누구보다 인정하고 사랑했다. 앞으로 오늘의 네 모습은 기억하지 않겠다. 오늘 이전의 너만을 생각하겠다. 그리고 네 마음에 들건 안들건 학교의 규율은 지켜야한다. 졸업때까지 영화를 보지 않겠다는 약속또한 지킬 것을 믿는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수미와 내가 눈으로 물었다.
“충분히 혼났을 거라는, 이번만 넘어가자는 나의 간곡한 건의가 받아들여졌다. 그러니 이 학교를 졸업하라는 말이다. 퇴학이 취소되었다는 뜻이다. 이 잘난 애들아!”
퇴학이라는 너무도 생소한 말에 사실 실감이 나지도 않았지만, 애수를 끝까지 못 본 오기로 대항하고 애꿎은 도서관만 망가뜨리던 나는 비로서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퇴학당할뻔 했다는 끔찍한 사실에 비로서 전율이 왔다.
“감사합니다. 절대로 영화는 보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전율하고 있는 사이에 수미가 벌떡 일어나 수없이 절을 하며 말했다.
다이아찡 선생과 동전한푼 선생이 퇴학 소리를 할때부터 이 순간까지 말 한마디 못하고 겁에 질려 떨기만 했던 수미였다.
“영화보러 미국까지 간다는 혜성이도 졸업까지만 보류해도 되겠지?”
비로서 교장의 얼굴에 퍼졌던 슬픔의 자리에 미소가 스며들었다.
“너희가 본 명화들이 어떤 소설가로 만들었는지 어떤 연주가가 되어있는지 졸업후에도 계속 지켜볼 것이다.”
나는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도서관을 부수는 제자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다니…, 규율을 어기고도 도서관까지 부수는 제자에게. 청주에서 보낸 3년의 고등학교에서 제일 큰 선물은 바로 이날, 교장이 내게 보낸 미소였다. 그리고 <애수> 사건으로 인한 선물은 또 있었다. 도서관 파괴 행위로 인한 회살의 눈총대신 오히려 동정론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속상하면 그토록 아끼던 도서관을…’, ‘맞아, 학교의 규율이란게 지나쳐’, ‘다정다감한 정혜성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니 역시 보통은 아냐’, ‘그래, 소설가가 되건 무엇이 되고 말거야.’
운이 좋았다고 한 마디로 말하기에는 설명이 안되는…, 또 운명이라고 결론 지워야 할 선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조회 시간의 단상 설교는 모두에게 고통이었지만, 도서관이 완성되고 전교생에게 도서 대여가 발표된 후로 모두들 나에게 감탄하고 있었던 터이기도 했다.
“네 덕에 우리 학교뿐이 아니고 청주의 모든 학교 학생들이 구제되었다. 하지만 자랑할 일은 아니다.”
이제 교장은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웃음이 피어있기까지 한 교장의 얼굴에 전했다.
“교장실도 어떻게 할까봐 겁나니 이제 나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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