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9일 지난 1987년 독재정치 재현 방지장치로 만들어진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의 용도 폐기를 주장하면서 4년 연임 헌법수정 제안 의사를 발표하였다.
이상적인 헌법은 국가 통치 구조를 형성하는 근간이다. 그래서 그때그때 시대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뀌거나 흔들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국의 헌법은 정치적 응급조치로 만들어진 법이었던 만큼 시대적 낙후성을 검토, 손질한다는 데 대해 굳이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개헌의 시기, 절차, 동기발상에 있다. 헌법 수정안을 2개월 내에 국회 의결을 거쳐 국민 투표에 부치면 오는 4월이나 5월이면 매듭지어질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 절차에는 별 하자가 없다. 헌법에 기술된 개정 절차를 따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대선의 해다. 중요한 대선 이슈를 희색 시켜가며 꼭 올해 해야 하는가? 국민들로 하여금 선거를 두 번 치르게 하는 셈이다. 대통령은 개헌을 대선과 같은 해에 하는 것이니 비용도 그리 부담 되지 않으리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
찬반 논란으로 오는 에너지 소모, 사회적 혼돈, 주의산만, 집중력 파괴가 대선과정에 도움이 안되며 이런 것들이 사회비용이다.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케네디와 닉슨이 대결, 닉슨이 아주 근소한 표 차로 패배했었다. 재개표를 하면 승패가 바뀔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기자들은 닉슨에게 왜 재개표 요구나 법적 소송을 하지 않고 결과에 그대로 승복하느냐고 물었다. 닉슨은 그 절차가 몰고 올 고통과 혼란 속에 국가와 국민들을 몇 년씩 희생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노대통령은 헌법 개정이라는 중요한 이슈를 어떤 의도로 내세웠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으로서 자기 존재와 리더십을 부각시키려는 발상인지 의심이 간다.
그뿐 아니다. 헌법 개정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절차는 국민의 민주 역량을 키우는 기회도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충분한 토론을 통한 폭 넓은 여론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다양한 안을 청문회, 웍샵, 지상토론, 시민 포럼 등을 통해 논의하다 보면 여론 집약효과는 물론 시민사회 육성, 국민의식 계발의 기회도 된다.
스웨덴은 반상회에서까지 정책토론을 하게하는 참여제도로 유명하다.
또 문제는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를 맞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안을 하나로 묶어서 제출하겠다는 의도는 내각제가 아닌 이상 행정부와 입법부 역할의 차이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 져 오는 것으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서둘러서 개헌을 할 것이 아니라 개헌 문제를 대통령 선거 투표에 같이 올려서 국민들의 의사를 묻는 것이다. 꼭 4년 연임제라고 못 박을 것 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 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 그 자체부터 먼저 민의를 알아보는 것이다.
미국은 1951년 수정헌법 제22조가 채택되기 전까지 대통령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었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직은 4년 임기 두 번이면 족하다고 해서 그것이 전통이 되었 다. 2번연임 전통이 1세기 이상 지켜져 오다가 1930년대 대공황을 타고 인기가 중천에 오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전례 없는 4선 대통령이 되면서 이러다 보면 합법적 독재도 가능하겠다는 우려가 제22 수정안을 제정하게 하였다.
한국의 대통령 임기와 관련, 헌법 개정이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차기 정권 의 몫으로 남겨서 시간의 여유를 갖고 할 일이라고 본다.
<차만재> 칼스테이트 프레즈노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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