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연재소설
신예선 소설가
소문에 의하면 수미의 책가방에는 피아노 책만 들어 있다고 했다. 교과서나 노트를 가져본 적이 없는 애라고. 오직 시험때만 공부 잘하는 애들에게 돌아가며 예상 문제 몇개씩 물어 시험을 보는데, 언제나 80점 이상은 맞는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습과 복습은 물론이고 숙제까지도 해 본 적이 없는데도 모든 선생들이 묵인해 줄 정도로 넘어가는 묘한 매력을 가진 애였다. 피아노 실력과 영어회화 실력이 한몫을 거들기도 했지만 귀여운 제스처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특이한 애이기도 했다. 반면에 은영은 누구와 말 하는 것도 보기 힘들고 쉬는 시간에도 제자리에 앉아 삼위일체 같은 두꺼운 책을 놓고 공부만 하는 애로 알려졌다. 화학과 물리 과목으로 인해 평균 점수가 떨어진 나에 비해 은영은 체육 한 과목이었기에 98점을 유지해 전교 수석을 3년 내내 지켰다. 따라서 은영은 책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철저한 모범생이었다. 피아노와 노는 것밖에 모르는 수미, 공부밖에 모르는 은영이와 나는 졸업때까지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다. 수미와 은영 사이에는 친구 될 기질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수미 기질과 은영의 기질, 양쪽 다 철저히 갖고 있어 수미와는 놀고 은영과는 공부만 했다.
강당의 문을 여니 수미는 벌써 피아노에 열중해 있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을 잡을 수 없을 만큼 건반위를 나르듯이 쳐대는 음은 경쾌하면서도 고혹적이었다.
“너, 지금 치고 있는 곡이 무어니?”
나는 뛰는 가슴으로 물었다.
“<웨버>(베버)의 <무도회의 권유(유혹)>야. 너, 이곡 모르는구나.”
“응, 처음 들어. 작곡가와 그 곡에 대해서 설명좀 해줘.”
“독일 작곡가야. <멘델스존>이 <낭만주의 관현악의 무기창고>라고 말할 정도의 음악가야. 이 곡은 1814년에 아내 생일 선물로 만든 피아노곡인데 몇년 뒤에 <베를리오즈>에 의해 관현악곡으로 편곡되고 다시 <바인가르트너>에 의해 근대 관현악곡으로 개곡되었어. 그리고 첼로의 서주로 시작해.”
“첼로로?”
외삼촌의 첼로로부터 음악에 빠졌던 나, 이제 수미가 있었다.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바인가르트너 등을 웨버의 무도회의 권유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수미가 새로운 곡을 칠 때마다 그 작곡가로부터 주변 인물과의 관계, 그리고 작곡의 동기나 유래를 캐어 나갔다. 외삼촌을 감동시킬 음악의 실력을 수미를 통해서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독서의 삼매경에도 빠지는 한편 학교 문예지에는 꽁트를 써냈다. 전쟁이 끝나고 외삼촌을 만나면 음악과 문학에 1대 1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확신에 찼다. 음악과 문학뿐이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 실력과 안목을 넓혔다. 그리고 명화 탐방에서 퇴학을 당할 뻔한 사건과 부딛쳤다. 우리집이 아버지의 직장 환도와 함께 서울로 올라간 후의 일이었다. 나는 도서관을 완수해야 한다는 대명제 아래 청주에 남았었다. 문예반장에서 도서반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도서관도 없는 도서반장의 무의미를 내세우고 방을 하나 얻어 시작된 도서관 설립이었다. 방도 방이지만 예산이 없다는 교장에게 기어코 창고방을 얻은 것이다.
“방만 주시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조회 시간때 저를 단상에 세워만 주시면 됩니다.”
“단상엔 왜?”
교장의 물음이었다.
“돈을 모으고 책을 모으려면 제가 전교생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 필요성을 설파해야 하니까요.”
교장의 허락을 받은 후 나는 우선 후배중에 소설 지망생인 유자경과 시인 지망생인 강선자를 불렀다. 문예반장으로 있을 때 글도 쓰고 편집도 도우며 나를 보좌한 애들이었다. 우리는 창고를 깨끗이 정리한 후에 USIS로 갔다. 그리고 한국 직원에게 도서관 설립의 계획을 설명하고, 사전 등 중요한 참고 서적을 넣을 유리장 한개와 일반 책장등을 도와 달라고 했다. USIS는 전에 학교의 교실마다 난로를 설치해 준 적이 있었다. 그 역할은 수미가 했었다. 수미는 책임자를 직접 만나 영어로 눈물겨운 제스처를 써서 얻어냈다. 영문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로부터 일찍이 영어와 피아노를 시작한 수미였다. 그러니까 은영이가 공부로 전교 수석을 지켰다면 수미는 영어회화와 피아노의 전교 수석인 셈이었다.
책장이 해결되자 나는 조회시간마다 단상에 올라가 일장 연설을 했다. 요지는 집에서 소설책, 시집, 잡지 등을 세권씩 가져 오던지 돈을 30원씩 내라는 것이었지만 책과 도서관의 필요성에 관한 훈계조의 강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회시간을 제일 싫어하던 전교생들은, 특히 3학년인 나의 동급생들은 참을 수 없는 조회시간이 되어 갔다. ‘다들 서울로 되돌아가는데, 쟤는 왜 안가고 우리를 괴롭히는 거니?’ 원성의 눈길이 교정을 휩쓸었다. 하지만 어김없는 나의 단상 등단에 결국은 학생들은 빠짐없이 책이나 돈을 가져왔다.
“3학년 언니들의 대부분은 조회시간이 길어지는 게 견딜수 없어서 가져왔대요.”
“그래도 1,2학년 학생들은 감동받았다고 언니를 흠모까지 해요.”
“한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단상 등단이 계속 된다니까 모두들 두손 들고…, 덕분에 빨리 끝이 났어요.”
“놀라운 건 교장 선생님 이하 모든 선생님들이에요. 언니가 단에 오를 때 미소까지 얼굴에 감돌았어요. 그러니 학생들이 더 어쩔 수 없게 된 거죠.”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