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에 신라의 경덕왕이 바름(正)에 돌아가는 문(歸正門)의 누루에 올라 봄빛이 가득한 서라벌판을 돌아보고 있다가 어느 스님이 누더기 차림에 통발을 지고 지나가거늘, 청하여 루에 오르게 하였다. 통발 속을 살펴보니 산벗나무로 만든 오래된 통 속에는 차를 달이는 다구가 들어 있었다. “스님은 누구시오” 물으니 “충담이외다.” “어디를 다녀오십니까” 재차 물으니 “산승은 해마다 3월3일과 9월9일에는 차를 달여 남산의 삼화령에 있는 미륵부처님께 차공양을 올리나이다. 그래서 지금 삼화령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하거늘, 왕이 “나도 차 한잔만 얻어먹을 인연이 있겠소” 하니, 그 자리에서 다구를 꺼내 차를 달여드렸다.
차의 맛이 상쾌하고 향기가 기이하여 왕이 놀라며 “짐은 스님이 지은 찬기파랑가의 뜻이 깊음을 알고 있소. 백성을 위해 안민가를 지어줄 수 있겠소?” 하므로, 그 자리에서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노래했다. 왕이 감격하여 왕사로 모시고사 했으나 소이불수(笑而不收), 웃음만 지을 뿐 받지 않았다.
신라 향가 14수 중 충담 스님이 지은 안민가와 찬기파랑가의 두 편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마음의 끝이라고 제목한 글은 찬기파랑가에 나오는 표현인데, 찬은 칭찬, 찬탄한다는 뜻이고, 기파는 화랑의 이름이다. 랑은 화랑의 줄인 말이므로 기파화랑을 찬탄하는 시(노래)라는 뜻의 향가, 신라 때의 시인 것이다.
“열치매 나타난 달아/ 흰구름 쫓아 떠가는 것 아니요?/ 새파란 알천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나이다/ 냇가의 조약돌마다에 기파랑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쫓고저 하나이다/ 아, 잦가지가 높아/ 서리를 모르는 화랑이시여”
이것은 불세출의 무여 거사(고 양주동 선생)가 반생의 노고로써 이루어낸 현대말 향가이다. 가졌던 구름장막을 열어제치고 나타난 달아 그대는 흰구름을 따라 서쪽으로 가시나이까 하고 달님에게 묻는 것으로 시는 시작된다. 서방정토를 그리워하는 충담 스님의 마음이리라.
그러나 달님의 대답은 기상천회한 것이니, 구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기파랑의 마음의 끝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계림에서 말 타고 활 쏘다가 알천 냇가에 나와 몸을 씻고 그 냇가 조약돌마다에 새긴 그 마음의 끝간 곳을 따라 가고프다는 독백이다.
그렇다면 기파랑이 천년을 뛰어넘는 그 시간에 경주 알천의 냇가에서 소석(小石, 조약돌)에 새겼던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 때로는 서라벌이 내려다보이는 산에 올라 수양할 때는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그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그 마음의 끝이 하늘에 닿는다면 천인(天人)이 되었을 것이고, 신에게도 닿았다면 신인(神人)이 되고 진실됨에 닿았다면 진인(眞人)이 되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 끝이 닿은 곳에서 맴돌기 마련이다. 그것이 ‘나의 세계’다. 그러므로 꿈이 세계다. 꿈이 세계가 되지 않는 사람은 향기 없는 꽃과 같다고 할 것이다. 평생 잡다한 주변사에만 마음의 끝이 닿아 있다면 이것이 그의 세계다. 그것이 가족이라면 가족은 그의 세계다.
창밖은 우중충하다. 겨울하늘답다. 내 마음의 끝닿은 곳은 어디일까를 응시하다가 문득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떠올랐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며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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