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와 기억
수필가 정유석
20세기 초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7편으로 구성된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발표했다. 출간된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의식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이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는 물론 카프카, 베케트 같은 작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20세기 심리주의 문학의 최고 작품으로 꼽힌다.
이 소설에는 잘 짜여진 플롯에 의하지 않고 잠에 빠져드는 듯한 상태에서 늘어놓은 독백으로 시작해 무의식의 기억을 통해 인간의 심층을 파헤치는 동시에 사라져간 과거 그리고 사라질 운명의 현재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그렸다. 작가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임무는 아직도 우리들사이에 남아있는 과거를 망각으로 흘러가지 않게 잡아 두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하소설의 첫 권은 [스완 네 집 쪽으로]다. 이 소설에서는 냄새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대목이 유난히도 여러 곳에서 눈에 뜨인다.
“ 이 최초의 스완-나는 이 사람 안에서 내 소년 시절의 즐거운 과실을 알아낸다.--이 최초의 스완은 언제나 한가롭고 큰 마로니에나 나무딸기 바구니나 사철 쑥의 새순 냄새를 풍기는 스완이었다.”
“나는 그 바람을 다시 만나보려고 언덕길을 올라간다.--나는 스완 아가씨가 그곳에서 며칠씩 지내곤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바람은 그녀의 곁을 지나온 것이다. 그것은 그녀한테서 온 어떤 소식이어서 내게 속삭이고 있지만 뜻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입맞추었다.”
냄새를 통한 과거의 추억은 끈끈한 접착제인양 집요하게 계속된다.
“그것은 시골 방이었다. 무수한 냄새로, 말하자면 덕성, 예지, 습관 같은, 주위에 감도는, 은밀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넘쳐흐르는 듯한 정신 생활의 모든 것으로부터 발산하는 무수한 냄새로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방이었다. 또한 그 냄새는 자연의 냄새, 이웃 시골의 냄새와 마찬가지로 그 철의 풍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대로 게으르게 눌러 앉아서 인간과 어울리고 떠날 줄 모르는 그런 냄새다. 다시 말해 그 냄새는 과수원에서 찬장으로 옮겨진 그 해의 모든 맛있는 젤리, 잘 익은 맛있는 젤리다. 철따라 변하지만, 세간의 하녀처럼 그 집의 특유한 냄새, 마을의 큰 시계처럼 한가로우나 시각을 어기지 않는 꼼꼼한 냄새, 빈둥거리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질서 있는 냄새, 돈담 무심하면서도 선견지명이 있는 냄새, 세탁물의 냄새, 아침 일찍 일어나는 냄새, 신앙심의 냄새, 평안을 들기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불안의 증가밖에 가져다 주지 못하는 평안을 즐기는 냄새, 그리고 거기서 살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 이의 눈에는 시의 큰 저수지 같아 보이나 실은 산문적인 것밖에 즐기지 못하는 냄새, 그러한 고모의 방 공기는 매우 영양이 되는 자양분이 많은 침묵의 미묘한 구수한 냄새로 포화되어 있었다.”
사실 냄새란 우리들의 기억에 가장 강한 각인을 남기는 감각이다. 예전에 의과대학을 중퇴한 한 학생이 있었다. 비교적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 징집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무수한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경험했다. 제대 후에 정상 생활에 복귀했으며 성적이 좋아 의과대학까지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외과 수술 장면을 목도한 후로 자퇴하고 말았다. 피범벅이 된 환자의 수술부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 때 이미 피에 적신 수많은 주검이나 부상을 보았다. 그런데 수술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출혈을 막으려면 혈관을 묵기도 하지만 미세 혈관에서 스며 나오는 피는 전기로 지져 지혈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이 견딜 수 없던 것은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 때문이었다. 그는 전장에서 살 타는 냄새를 한 번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외상(外傷)이 되어 기억 속 깊이 묻혀 있다가 수술실에서 “플래시백”(Flashback, 갑자기 떠오르는 과거의 장면)으로 나타났으며 그것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어떤 냄새는 기억에서 영영 지울 수 없는 강력한 영향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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