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시인)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때가 무척 추웠던 기억이 난다. 쇠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 쩍! 달라붙을 정도였다. 깊은 산골에 살던 나는 십리를 걸어서 입학을 하러 갔는데 기다려야 하는 줄이 너무 길어서 추위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학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기다리느라 거의 지쳐 있을 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길게 접은 하얀 손수건을 내 이름표와 함께 나의 가슴에 달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추위를 다 잊어버렸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이름표를 달았다는 자체만으로 흐뭇했었다. 이미 불려지던 이름이지만 이름표를 단 학생이라는 존재로 인정 받았다는 것 때문이었으리라. 그때의 감격을 되돌아보면 지금도 혼자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알게 된 한 분이 나에게 이름표를 달아 주었다. ‘예쁜 동생’이라고 말이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입학할 때 달았던 이름표를 다시 받은 것처럼 기뻤다. 묻어두고 살아온 기쁨의 씨앗이 싹트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 같은 순수함을 동경하는 마음이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이 가까운 형제 없이 혼자 자란 나였기에 언니나 동생이란 단어가 무척 어색하기만 했었는데. 어려운 외국어처럼 그런 단어를 나의 입술로 발음하기 무척 어색했었는데. 그래서 소멸되다시피한 언어였는데. 그 분으로 인하여 새로운 어휘를 찾는 학교에 입학한 것 같았다. 그것도 좋은 이름표를 달아주었으니 이름 값을 하고 싶었다.
그 분이 얼마 전에 생일을 맞았다. 거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라 마땅히 선물할 것이 없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손수 무엇인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몇 일 동안 그 분이 좋아하고 그 집에 어울일 만한 색깔을 생각하며 이 곳 저 곳 몇 군데를 들러 재료를 구입했다.
참 신기한 것은 선물을 만들기 위해 그 분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그 분을 생각하는 것이 기뻤다. 예쁜 이름을 주신 분을 위해 나의 마음이 담긴 무엇인가를 선물한다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타난 결과만이 아니라 훨씬 오래 전부터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잉태된 것이었다. 그 생각은 점점 새로워지고 마음으로 그려지고 나서야 실제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다른 분들로부터 받았던 선물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생일을 맞은 그 분께 전할 카드에 “나에게 이름표를 달아 주어서 감사합니다. 나도 ‘예쁜 언니’라는 이름표를 달아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만으로도 저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예쁜 언니!”라고 써서 전했다.
이 곳으로 이민 와서 분주하게 살면서 얼마나 내 자신의 이름을 잊어 버리고 살았던가? 그리고 내 주위에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누구 누구의 엄마, 또는 미세스 누구라 하여 혹시라도 정서적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도 예쁜 이름표를 달아 주어야겠다. 지체하지 말고 서둘러야겠다. 그래서 나와 같이 묻어두었던 설레임이 싹 트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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