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깊다. 아직도 라이브의 여운이 느껴져 그가 갈까요 갈까요 가봅시다 하면 당장이라도 이은미 따라 소리를 질러댈 듯하다. 이은미는 공연 후 “여러분이 저랑 같이 하나가 되어 주어서 즐거웠고 감사했다. 또 오고 싶다. 제가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준 것이 아니라 여기 분들이 저를 행복하게 해주셨다”고 인사했다.
3시간 공연으로 서로 행복을 전해주고 받았다면 더 이상 그 무엇이 필요할까? 그 행복한 공연 현장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인간 이은미의 솔직함과 큰 틀을 벗어던진 내면의 부요함, 노래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진정한 예술정신이었다. 그 감동의 무대로 다시 들어가본다.
나를 가둔 틀에서 벗어났다
미쿡 노래 두곡을 부르고 숨을 몰아쉬는 이은미를 향해 객석의 누군가가 ‘왜 신발 신고하세요?’ 라고 외쳤다. 맨발의 디바, 맨발로 무대를 뛰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성급하게 보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이은미는 가수로서의 고민과 번민을 되뇌였다. “50년의 짧은 가요계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 너무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90년대 음반시장이 커지면서 그에 따른 병폐로 뒷거래도 암암리에 되어왔다. 거대 기획사의 대규모 마케팅에 밀려 실제로 음악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 저도 염증이 나서 2년간 음악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복잡하고 괴로운 심경에 처해 있을 때 가야산 해인사에 갔다. 난생 처음 스님들과 독대하며 좋은 말씀 듣고 차도 마시고 마음의 앙금이 여과된 느낌이 들었다. 아차 싶어 서울로 돌아와 만든 것이 6집이다. 마법을 걸 듯 신발을 벗고 무대에 올랐지만 이조차도 나를 가둔 틀이었다. 이제는 무대 위에서 신발을 신든 벗든 별로 상관이 없어졌다. 그 마음가짐으로 새노래 전해주고 싶다”며 이은미는 ‘애인… 있어요’를 불렀다.
라이브의 여왕답게 애드립도
언니 둘 오빠 둘 사이에서 자란 이은미는 형제들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적 감수성에 눈을 떴다. 그 시절 이은미 노래의 자양분이 되어주던, 햇살이 되어주던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카펜터스의 ‘수퍼스타’, 그의 음악인생에 버팀목인 윌슨 피켓의 ‘Mustang Sally’ ‘in the Midnight Hour’로 그가 얼마나 보폭이 넓은 가수인지를 확인시켜주었다. 락에서 발라드, 솔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객석에서는 ‘이은미 최고다’라고 하자 ‘미국 땅에도 널리 알려주소서’라고 되받아치는 매너, 600회 라이브 공연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멘트였다. 어쩌다 조용한 집중을 깨는 아이들의 소리라도 들리면 지금 이야기하는 상황과도 기가 막히게 연결시키고, 관객들이 내숭을 떨치고 자연스레 무대와 하나되도록 이끌었다.
처연한 아름다움 전해준 두 곡
“큰 비가 쏟아지던 밤 그대 곁에 갈 수 없다면 그대 젖은 옷깃에 스며드는 비가 되고파” 자신의 목소리와 연주가 어울리지 않아 6개월 내내 수없이 다르게 녹음했다는 ‘아카시아’는 멤버 박경호의 어쿠스틱 기타와 어울려 또 하나의 이은미의 히트곡이 될 것을 예감케 했다. 5집 ‘선플라워’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주기는 마찬가지. 이 곡은 다카시 마리코 일본 여가수 노래인데 원곡 제목은 분홍빛 숨결이다. 여자도 사랑을 하면 숨결조차 분홍빛이 된다는 감미로운 노래인데 나는 왠지 이 노래의 멜로디를 들었을 때 기쁨보다는 사랑의 슬픔이 더 느껴졌다. 그래서 ‘그리움아 그리움아 그대가 나를 잊어도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더 사랑하지 않으리’ 이 8절 소절을 쓰기까지 2년이 걸렸다. 왜 그렇게 시간이 걸렸나,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낸 곡이다.”
관객 서비스가 최고인 가수
한국에서부터 이은미 팬이었다는 불광사 여준스님, 보리사 형전스님 돈오스님도 맨 앞좌석에서 열띤 호응을 보냈다. 종교는 없다 밝혔지만 이은미가 6집 앨범을 만들도록 독려해준 가야산 해인사가 화면으로 등장하자 스님들의 얼굴은 더욱 환해졌다. 밤 11시가 넘도록 팬 사인회를 하면서 이은미는 관객서비스가 가장 좋은 가수임을 입증했다. 관객들과의 사진촬영에서 행복하세요라고 두손 모아 합장하는 모습까지. 그는 6집 앨범 제목-- ‘마 농 탄토(Ma Non Tanto)’.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처럼 음악 앞에 사람 앞에 겸허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12일 이은미는 다시한번 그 폭발력으로 라스베가스를 흔든다.
<신영주 기자> yj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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