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아니요 지위도 아니요
행복은 곧 우리의 마음이라
시작없는 옛적부터 끝없는 훗날까지, 천지개벽부터 천지개벽까지, 100년에 한번씩 내려와 한번씩 스치고 간 선녀의 옷깃에 닳아서 태산같은 바위가 닳아서 끝내 없어질 때까지, 사방 1유순(약 15㎢)나 되는 성 안에다 겨자씨를 가득 채운 뒤 100년에 1알씩 집어내 끝내 없어질 때까지, 이름하여 겁(劫), 그 무진장 긴 겁의 겁 제곱을 논하는, 논한다기보다 그것을 뛰어넘는 무엇을 ‘잡으려고 놓으려고’ 정진하는 수행자들의 시간표에, 그날(80년 10월27일) 새벽 댓바람에 들이닥친 군인들의 행패가 제아무리 모질다한들 길었다한들, 그 시간표 그 어디에 좁쌀 흔적이나 남았으랴.
한국불교 1700년사 최대수난 중 하나인 10.27 법란, 그 불교계 대탄압 회오리에 휘말린 설조 스님이 샌프란시스코에 여래사를 열게 한 사건. 그래서 매년 10월 마지막 일요법회와 겹쳐 치르는 개원기념법회 때면 떠올리는 단골메뉴지만, 정작 설조 스님에게는 이미 잊어버린 일 혹은 애당초 있지도 않은 일인 듯했다.
(나는) 교단에 어려움이 좀 있어서 왔지마는 여러분은…
지난달 29일(일) 열린 샌프란시스코 여래사 개원 26주년 기념법회에서 행한 설조 스님 법문이 그때 그 사건을 잠깐이나마 스친 건 이뿐이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행복론을 위한 추임새였다.
(당나라 때 큰스님) 마조 스님은 평상시의 마음이 곧 행복이다 평화다 혹은 도(道)다 혹은 진리다 하셨습니다. (수나라 때 큰스님) 승찬 스님은 어리석은 분별만 없으면 누구나 다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높은 지위를 행복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행복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행복을 잘 정(의)했지만 행복에 이르는 길을 잘못 선택해 행복해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행복은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모한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훌륭한 임금이라도 백성들에게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행복은 우리 마음에 내재하고 있다, 곧 우리 마음이 행복이다, 그런 말씀과도 같습니다.
설조 스님이 해맑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은 채 행복론을 이어가는 모습은 법란의 총지휘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고 최규하 대통령 장례식 때(10월26일) 전직 국가원수 등 단상의 조문요인들 중 홀로 반야심경을 따라부르는 모습과 포개졌다 떼어졌다 길고 짙은 여운을 남겼다. 전 전 대통령이 퇴임후 5공비리 단죄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찾아들어 심신을 의탁한 곳 또한 절간(백담사)이 아니던가. 극적인 반전, 기묘한 인연…
꼬마불자들과 이방인불자들을 포함해 육칠십명이 합장한 가운데 이날 오전 11시 시작된 개원기념법회는 다함께 삼귀의와 찬불가, 꼬마불자들의 헌화, 신진휴 신도회장의 기념사, 자비행 보살의 축가, 주지 수원 스님의 헌공과 회주 설주 스님의 행복을 찾는 법문에 이어 다함께 사홍서원까지 50여분동안 진행됐다. 신 회장은 ▷삼보를 외호하는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개인소질에 따라 불법을 위해 봉사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닦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고 다짐 겸 주문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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