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에는 고행이 있고 야(野,세속)에는 고생이 있다. 고행이란 욕심을 비우는 일 그 자체이며 고생은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욕심을 해결하는 두가지 접근방법이지만 어렵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욕심을 비우거나 채우거나 어느 것이든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아니 쉽고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욕심은 원래 끝간 곳이 없기 때문에 끝까지 비우거나 채우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리라. 고행쪽을 택하는 이를 출가라 하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을 재가라 하는 것이지만 재가든 출가든 죽을맛은 마찬가지다. 사람의 욕심이란 식(食)과 색(色) 두가지다. 먹고마시는 일과 남녀사이의 일 두가지 말이다.
산거(山居)에는 고기먹는 육식을 금한다. 산목숨 죽이는 것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관념론적인 것보다 우선 혀끝에 고기맛을 들이지 않음으로써 힘든 일이 없고자 함이 그 첫째 이유다. 음욕을 뿌리쳐야 하는 것도 우선 허리가 휘고 살이 터지는 고생을 면하고자 함이다. 남녀의 문제가 없고 그로 말미암았던 가정과 가족이라는 것의 문제가 없다면 얼마나 편하랴! 그러므로 출가의 산거에는 계행을 으뜸으로 삼는다. 그러나 피하고 외면함으로써 그 엄청난 고행을 이어갈 수는 없는 일. 거기에는 법락(法樂)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마치 세속의 즐거움인 세락이 있어서 그 힘든 삶을 이어가듯이 말이다.
최근세 한국불교에서 가장 고행승으로 추앙받는 이는 순호 스님이다. 속옷하나 입지 못하고 맨발로 팔도강산을 헤매며 다녔다. 수월 스님을 친견하고자 만주땅 북간도도 휘적휘적 맨발로 걸어서 다녀오셨다. 돌뿌리와 나무 뿌리로 뒤엉켜있는 산길에 피가 묻어있으면 모두들 순호 스님이 다녀가셨구나 했었다 한다. 자기 속마음의 욕망과 죽음을 건 그 스님의 싸움은 이렇게 치열하였다. 왜정치하에서 마을에 순사가 나타나면 모든 아이들이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잡혀가 매맞을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또한 밥을 빌고 곡식을 얻으려 순호 스님이 마을에 나타나면 모든 아낙네들이 한숨과 울음을 삼켰다고 한다. 저 엄청난 고행승 앞에 어찌 세속의 슬픔을 하소연할 수 있었으랴. 그때의 우리네 여인들은 염치를
알았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 순호 스님은 산승(山僧)의 고행을 접고 도시로 내려와 야승(野僧)이 되었다. 조계사를 차지하고는 청담이라는 법호로 통했는데 왜색불교 청산하자고 외쳤던 저 유명한 불교정화운동의 시작이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명리승(名利僧)이라고 욕도 많이 먹었다. 송구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신도들 앞에 스님은 항상 빙그레 웃으시며 위로했다. 중은 고행만 있지 고생은 없는기라! 산에서나 들에서나 한결같이 고행으로 중살림을 삼으신다는 말씀이겠지.
요즘에 이르러서 고행이 소멸되어가는 불교계는 참으로 쓸쓸하다. 교화(포교)를 한다고 모두들 하산길에 올랐다. 허나 정작 부처님에게는 교화란 없다. 응화가 있을 따름이다. 응화조차도 진리스럽지 못하다고 금강경은 질타하고 있다. 비록 부처님의 일이지만 유위법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유위법은 꿈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번갯불 같고, 이슬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그 말씀 말이다.
산고행(山苦行)
산(山)에는 고행이 있고 야(野,세속)에는 고생이 있다. 고행이란 욕심을 비우는 일 그 자체이며 고생은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욕심을 해결하는 두가지 접근방법이지만 어렵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욕심을 비우거나 채우거나 어느 것이든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아니 쉽고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욕심은 원래 끝간 곳이 없기 때문에 끝까지 비우거나 채우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리라. 고행쪽을 택하는 이를 출가라 하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을 재가라 하는 것이지만 재가든 출가든 죽을맛은 마찬가지다. 사람의 욕심이란 식(食)과 색(色) 두가지다. 먹고마시는 일과 남녀사이의 일 두가지 말이다.
산거(山居)에는 고기먹는 육식을 금한다. 산목숨 죽이는 것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관념론적인 것보다 우선 혀끝에 고기맛을 들이지 않음으로써 힘든 일이 없고자 함이 그 첫째 이유다. 음욕을 뿌리쳐야 하는 것도 우선 허리가 휘고 살이 터지는 고생을 면하고자 함이다. 남녀의 문제가 없고 그로 말미암았던 가정과 가족이라는 것의 문제가 없다면 얼마나 편하랴! 그러므로 출가의 산거에는 계행을 으뜸으로 삼는다. 그러나 피하고 외면함으로써 그 엄청난 고행을 이어갈 수는 없는 일. 거기에는 법락(法樂)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마치 세속의 즐거움인 세락이 있어서 그 힘든 삶을 이어가듯이 말이다.
최근세 한국불교에서 가장 고행승으로 추앙받는 이는 순호 스님이다. 속옷하나 입지 못하고 맨발로 팔도강산을 헤매며 다녔다. 수월 스님을 친견하고자 만주땅 북간도도 휘적휘적 맨발로 걸어서 다녀오셨다. 돌뿌리와 나무 뿌리로 뒤엉켜있는 산길에 피가 묻어있으면 모두들 순호 스님이 다녀가셨구나 했었다 한다. 자기 속마음의 욕망과 죽음을 건 그 스님의 싸움은 이렇게 치열하였다. 왜정치하에서 마을에 순사가 나타나면 모든 아이들이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잡혀가 매맞을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또한 밥을 빌고 곡식을 얻으려 순호 스님이 마을에 나타나면 모든 아낙네들이 한숨과 울음을 삼켰다고 한다. 저 엄청난 고행승 앞에 어찌 세속의 슬픔을 하소연할 수 있었으랴. 그때의 우리네 여인들은 염치를
알았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 순호 스님은 산승(山僧)의 고행을 접고 도시로 내려와 야승(野僧)이 되었다. 조계사를 차지하고는 청담이라는 법호로 통했는데 왜색불교 청산하자고 외쳤던 저 유명한 불교정화운동의 시작이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명리승(名利僧)이라고 욕도 많이 먹었다. 송구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신도들 앞에 스님은 항상 빙그레 웃으시며 위로했다. 중은 고행만 있지 고생은 없는기라! 산에서나 들에서나 한결같이 고행으로 중살림을 삼으신다는 말씀이겠지.
요즘에 이르러서 고행이 소멸되어가는 불교계는 참으로 쓸쓸하다. 교화(포교)를 한다고 모두들 하산길에 올랐다. 허나 정작 부처님에게는 교화란 없다. 응화가 있을 따름이다. 응화조차도 진리스럽지 못하다고 금강경은 질타하고 있다. 비록 부처님의 일이지만 유위법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유위법은 꿈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번갯불 같고, 이슬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그 말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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