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황석(전 뉴욕한인약사회 회장)
승용차를 타고 가는데도 마라톤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11월 11일 뉴욕에서 필라델피아까지 달리는 ‘서재필박사 애국정신 선양 달리기 대회’의 코스 답사차 필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차 안에는 뉴욕마라톤협회의 권이주 회장, 이현택 회원, 이남석 회원이 함께 했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환갑이 넘도록 마라톤을 뛰는 노익장들이다.이들이 가슴마다 ‘서재필박사의 애국정신’을 붙이고 뉴욕에서 필라까지 장장 150마일을 달릴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온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가슴에서 일장기를 떼어버리고 동아일보에 실린 모습을 보는 것 만큼이나 흥분이 된다.
69세의 고령 이현택옹이 소년처럼 흥분했다. 나는 선수가 아닌 운전기사 자격으로 차를 몰고 있는데도 손기정 선수, 황영조 선수처럼 힘차게 마라톤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뉴저지 턴파이크를 달리던 차가 델라웨어강을 건너자 필라델피아가 나타났다. 우리는 필라델피아 시내를 오른쪽으로 보면서 남서 방향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신작로처럼 생긴 조용한 시골
길이 나타났다.서재필 기념관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라톤 이야기로 흥분하던 우리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치 서재필 박사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 시골길로 들어선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재필 박사는 1864년 1월 7일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에서 태어났다. 용암리는 주변에 명승고적 관광자원이 아름다운 남도의 애향이다. 지금 그곳에 가면 서재필 박사의 생가가 방문객을 반갑게 기다리고 있다. 독립문과 서재필 동상이 서있는 서재필 기념공원도 있다. 500여점의 유품을 전시할 박물관과 100여점의 조형물이 있는 조각공원이 공사중이다. 겨레의 선각자 동상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묵념에 젖어있는 길손의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서재필 박사가 고향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려서 충남의 재당숙에게 양자로 갔고 곧바로 서울로 유학했기 때문이다. 13살에 장원급제를 한 송재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과 저 유명한 ‘갑신정변’을 일으켜 국가 개혁을 꾀하지만 3일 천하로 끝난다.
부모, 아내, 형, 동생은 물론 2살짜리 아들까지 역적으로 몰려 일가족이 참살당하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거기서 배재학당 창설자인 아펜젤라 선교자를 만나 한 분은 조선으로, 한 분은 미국으로 간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민권을 얻고(1890년) 아시안 최초의 의사가 되어(1892년) 개업한다. 그러나 부와 명예가 보장된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한 서재필은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협회, 독립신문, 협성회를 만들고 배재학당에 출강하여 이승만, 주시경, 오긍선 등 많은 제자들에게 교육 계몽운동을 통하여 근대화, 독립심을 고취하는 많은 씨앗을 뿌렸다.
수구파의 압력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조선 독립을 위해 자기 희생을 하다가 해방된 조국에 재차 나와서 민주주의 씨앗을 뿌리다가 필라에서 6.25사변 소식을 듣고 눈을 감으니 그 때 향년 87세였다.
필라 다운타운에는 무료 병원과 한인들의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는 서재필 센터가 있다. 도심에서 30분 거리 Media 타운에는 서재필 기념관이 있다. 서재필 박사가 26년간 살다가 눈을 감은 집이다.한인 유지들과 한국정부가 힘을 모아 1990년에 생가를 서재필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기념비가 있는 Rose Tree Park에 가서 기념비 앞에서 눈을 감았다. “박사님, 오늘은 겨우 네 사람이 찾아와 뵙지만 오는 11월 11일에는 70여명의 마라토너들이 150마일을 달리고 또 달려 박사님을 뵈러 올 테니까요”곧 서재필 기념관에 들려 남기고 간 유품들을 보면서 남기고 온 조국을 생각하면서 조국이 잘 돼야 우리 이민자들이 잘 되겠는데!! 상념에 젖어 뉴욕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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