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 가드에게 연락이 가고 육두문자가 사무실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지난주 발생했다.
평소 사람 좋기로 평판이 난 부동산 에이전트 박 선생이 그토록 흥분한 모습을 보고 놀란 사무실 직원들의 SOS를 받고, 점심을 하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달려와 보니 셀러와 바이어의 설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쪽과 자기 방어를 해야하는 양 진영의 다툼에서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이는 소위 ‘중립자’ 위치를 굳건히 지켜야하는 에스크로의 피하고 싶은 임무이건만, 이번 일은 바이어에게 있어 심히 약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봐야할 것 같았다.
프렌차이즈 식당을 심사 숙고하여 결정한 바이어 최 선생 부부는 집의 에퀴티도 준비하고 한국에서 송금도 받고 이사할 집도 알아보고 신변 정리를 시작하면서 부부 모두 이 사업체 매입에 전적으로 매달려 오다가 날벼락을 맞았노라고 볼멘 소리이고, 본인들이 못 팔게 된 사업체 때문에 결국 물질적으로 손해본 것이 대체 뭐가 있냐고 따지는 셀러를 보면서 급기야 팔을 걷어 부치고 ‘싸움’에 거들게 되었던 것이다.
셀러의 사연인 즉, 본인이 가족 중 전적으로 혼자 가게를 운영해 오면서 모든 결정을 거의 단독으로 처리하다보니 가게의 실소유자인 고모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결국은 그 반대에 부딪혀 못 팔게 되었으니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고 배를 내미는 꼴이 된 것이다.
부동산 계약서에도 그리고 에스크로에 제출한 해약서에도 본인의 서명과 정확한 이름을 셀러로 기재하였다. 처음 오픈 당시 셀러인 이 사장은 에스크로에서 가게 명의에 대해 묻자, 주식회사로 되어있는 소유주에 그냥 고모님이 들어있으실 뿐, 본인이 모든 사인과 결정을 직접 하므로 자신이 대신하여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원하는 깐깐한 에스크로 때문에, 여행중인 고모가 돌아오는 데로 1주 후에 서류에 사인하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 1주 후에 이 사업체의 ‘회장님’인 고모의 반대로 계약을 파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오는 사업체일 경우 이런 상황은 더욱 빈번한 해프닝으로 일어난다. 가게나 공장에 걸려있는 사업체 승인 혹은 라이선스에 있는 이름이 주인의 한국이름인 것으로 종업원들에게 착각이 되기도 하고, 연로한 부모님은 2세에게 물려주고 실제 영업은 후손들이 운영해온 경우에도 흔한 일이다. 불황과 폭동 등 온갖 어려운 고초를 겪으면서 사업체를 일궈온 1세들에겐 영광의 상처로 크레딧에 흠이 난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자격이 된 자녀들의 이름을 사장님으로 앞세우게 된다.
이름보다 성으로 부르는 우리네 문화에서는 아들도 김 사장이고 아버지도 김 사장이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종업원이나 거래처 혹은 외부인들에게 주인은 그저 김 사장인 것이다. 수표나 모든 서류에도 ‘위임장’없이 자연스럽게 사인도 하고 거래처나 고객들에게도 언제나 ‘사장님’으로 통하므로 ‘회장님’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까다롭고 피곤한 바이어가 졸지에 되고 만다.
결국 그 몫은 에스크로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못마땅한 ‘사장님’들과, 귀찮아하는 ‘회장님’들 사이에서 두 번의 설명과 반복을 해야하는 일이 참으로 비일비재하다.
이민 사회의 성장으로 과도기적인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문서와 소유권에 대한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는 우리네의 나쁜 습관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타인종의 경우, 부부 혹은 부모 자식사이에도 지분까지 갈라서 파트너십을 만들어 사업이나 건물을 소유하는 오너들이 일반적이다. 부모나 한 쪽 배우자의 유고시, 너무도 당연하게 상속으로 생각하는 우리네와 달리 교회나 복지 기관에 헌납하기도 하고 자식이 아닌 손자에게 트러스트를 설정하기도 하고 자유롭다.
다행히 바이어 최 선생 부부의 이해와 셀러인 이 사장 그리고 회장인 고모의 적절한 사과와 함께 에이전트 박 선생의 지혜로 사건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여러 번 방문한 셀러들의 비용이 사뭇 궁금하긴 하다.
(213)365-8081
제이 권 <프리마 에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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