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역할을 하는 책꽂이를 통해 자기 방안의 비밀의 방에 들어가는 캐미 베구.
책꽂이 밀어내니… 계단 올리니…앗! 비밀의 방이
시카고 교외에 사는 캐미 베구(13)의 침실 핑크색 벽 한쪽에는 흰 붙박이 책장이 있다. 책과 봉제 인형, 배구 공 등이 놓여 있는 책꽂이를 밀어내면 불빛이 환한 작은 방이 나타난다. 책상과 의자, 랩탑 컴퓨터가 놓인 그 방은 캐미가 공부하는 곳이다. 그 방을 자기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미의 방에는 지난 3월 입주이래 벌써 친구들이 30명 이상 다녀갔다.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아무도 책꽂이의 비밀을 알지 못했는데 그것은 집이 완공된 다음 검사를 나온 인스펙터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있고 싶어서” “재미 삼아서”
최근‘감춰진 방’건축 지속 증가
준공검사 인스펙터도 모를 정도
설치비는 5,000~2만5,000달러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커다란 책꽂이나 계단을 옆으로 밀거나 앞으로 당기면 스르르 나타나는 숨겨진 방에서 비밀이 시작되거나 그 단서가 풀리는 것은 고금의 추리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인데 그런 비밀스러운 방을 자기 집에 마련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확실한 데이터는 없지만 건축가들은 지난 5년 사이에 감춰진 방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고객이 증가해 왔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같은 기간동안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대단히 기계화된 것까지 다양한 문을 생산하는 회사가 최소한 4개는 생겨났다.
일리노이주 위네카에 기반을 둔 건축가 찰스 레이지는 지난 40년 동안 주택설계를 해오며 한번도 디자인 해보지 않은 숨겨진 방을 둔 집을 2001년 이래로 8채나 설계했다고 말한다. 로스앤젤레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티모시 코리건도 전폭적으로 동감한다. 지난 12년 동안 개업을 해왔지만 한번도 주문 받지 않았던 비밀의 방을 4년 전부터 5개나 만들었다는 것이다.
요새처럼 방어공사를 한 방은 전부터 있어 왔고 2002년에 나온 조디 포스터 주연 영화 ‘패닉 룸’ 상영 이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요즘 감춰진 방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은 주택침입에 대비한 방어용이라기보다는 재미 삼아 만드는 사람이 더 많다고 코리건은 말한다. “숨겨진 방의 신비감을 즐기는 것 같아요”
<계단이 올라가면서 모습이 드러나는 루이즈 커처의 비밀의 방>
방을 숨기는 흔한 방법은 붙박이장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경첩과 롤러, 손잡이가 숨겨진 책꽂이를 앞에 두는 것이다. 시공업자들은 책꽂이를 직접 짜거나 ‘니치 도어스’ ‘히든 도어 컴퍼니’ ‘하이드 어 도어’ ‘시크릿 도어웨이즈’ ‘데코라 도어스’ 같은 제조사에서 구입하는데 그 제조사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격은 가장 기본 모델이 800달러 정도고 맞추면 1만달러가 넘기도 한다.
애리조나주 템피에서 2년 전 방이나 금고를 감춰주는 자동문을 전문 제작하는 ‘크리에이티브 홈 엔지니어링’을 창립한 스티븐 험블은 자기 고객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말한다. 즉 비상시에 대피하거나 귀중품을 감춰 놓기 위해 비밀의 방을 만드는 사람과 멋있다고 생각해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회사는 이제까지 신축 및 개축 주택에 25개 가량의 맞춤 문짝, 책꽂이, 금고 및 기타 필요한 것들을 제작했는데 그 중에는 벽난로 뒷벽을 열면 방이 나타나는 집도 있었다. 설치비는 5,000달러에서 2만5,000달러까지였다.
애리조나주 메사에서 교직에서 은퇴한 루이즈 커처가 지난 1월 남편과 함께 이사한 집은 지은지 1년 된, 4,300스퀘어피트 면적의 현대식 주택이었는데 매스터 베드룸의 계단이 올라가며 나타나는 숨겨진 방이 보너스로 들어 있었다. 천장이 5피트 반밖에 안돼 지금은 골동품 침실세트를 넣어 두었지만 장차 손자손녀들과 함께 놀이 방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아 커처는 기대가 크다.
숨겨진 방들은 집주인의 장난기를 말해 주지만 보다 심오한 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텍사스주 험블에서 평균 1,600달러짜리 문짝을 만드는 ‘하이드 어 도어’를 동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크리스탈 스트롱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괴짜 손님들만 모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사람들은 누구나 괴팍한 면들이 있고 저마다 자기 집을 독특하게 꾸미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랄리에서 주택을 설계하는 건축가 사라 수잔카는 숨겨진 방은 집에 개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옷장 뒤에 숨은 방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한 고객은 그 방을 화실로 꾸몄다고 수잔카는 말했다. “그 사람은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라 숨어야지 자기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답니다”
비밀의 방으로 통하는 문들도 가끔 말썽을 부린다. 책장을 움직이면 거기 얹어놓은 책이나 공 같은 것이 굴러 떨어지기도 해 캐미 베구는 손님이 오지 않으면 비밀의 방 문을 열어 놓은 채로 둔다. 모터 달린 책장의 경우엔 열고 감춰진 방에 들어갔다가 리모트 컨트롤을 놓고 나오거나 암호를 잊어버리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비밀의 방을 가진 집을 짓는 일은 일생에 한번이나 있을까 말까한 기회”라고 서재의 책장 뒤로 서재가 내려다보이는 이층의 집필실과 아래층의 홈 디어터로 연결되고 거울로 다목적실의 바 전경까지 볼 수 있는 조촐한 나선형 계단을 만든 메릴랜드의 부동산회사 사장인 존 코일은 말한다. “무슨 쓸데가 있겠습니까? 사실 전혀 없죠. 비밀의 방을 만들어 달랬더니 건축업자가 깜짝 놀라기에 제가 어려서 만화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보다고 얼버무렸지요”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