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성결교회 담임)
2006년 9월 9일 KBS 스페셜에서는 <후세인과 샬림의 캘커타 스토리>를 방영했습니다. 인구 1,300만 명이 북적대는 옛 수도 캘커타에는 인도 전역에서 몰려든 40%의 일용직 근로자가 도시 인구의 30%로 이루어진 빈민지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후세인은 50년간 인력거를 끈 70세 노인이고 샬림은 55세의 인력거꾼입니다. 이제는 실직한 동생 가족들까지 포함하여 17명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샬림은 캘커타의 셔더 거리에서 32년간 인력거를 끌고 있습니다.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온종일 맨발로 긴 수레를 끌면서 그가 버는 돈은 약 90루피(한화 약 2천원)에 불과합니다. 매월 버는 돈 2,700루피에서 2,500루피(5만5천원)를 고향으로 송금하고 자신은 나머지로 살아갑니다. 기자의 질문에 구리빛 얼굴의 그가 웃음을 머금으며 답했습니다. “가끔은 행복하고 가끔은 슬픈 것, 그게 인생이잖아요?”
오우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델라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인생은 흐느껴 우는 것과 훌쩍거려 우는 것과 미소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서도 훌쩍거려 우는 것이 가장 많다.” 울고 웃는 것이 인생입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슬픔이 있고, 불행으로 찌든 사람에게도 기쁨과 행복이 감춰져 있습니다. 슬픔을 어떻게 다루느냐? 가 행복과 불행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작은 불행을 큰 슬픔으로 키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슬픔도 얼음처럼 녹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슬픔이란 마음의 벗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슬픔은 나누는 만큼 줄어듭니다. 슬픔은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털고 가야 합니다. 슬픈 노래는 가락조차 슬픕니다. 슬픈 노래는 1절로 그치는 것입니다. 슬픔을 강조하는 후렴은 반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 부르면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똬리를 틉니다. 내 인생의 슬픔을 줄이려면 슬픈 가사를 기쁜 노랫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밝은 곡조에 같다 붙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비탄에 잠긴 세월이 참으로 길었습니다. 민요에 묻어 있는 민중의 한과 구슬픈 가락들은 5천년 역사의 뒤안길에 피어난 슬픔의 꽃이었습니다. 피고 지고 다시 피기를 계속한지 오래 되었건만 이 민족의 역사에 반점처럼 박혀 있는 슬픔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삼국통일의 대업이라는 미명 하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젊은이들은 제물이 되었고, 몽고군에 항쟁하던 삼별초는 최후로 제주도의 항파두리 성에서 넋이 되어 흩어졌습니다. 왜군의 망동에 삼천리가 연거푸 피로 물들어야 했고, 그 후손들에 의해 동학혁명으로 다시 수십만 농민들이 낙엽처럼 쓰러져갔습니다. 왜놈의 강점 아래 학도병으로, 근로대로, 정신대로 끌려가 굶어죽고 맞아죽고 찢겨죽어야 했고, 민족상잔의 피비린내 속에서 숱한 생명들이 이념의 희생자들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5.18 광주항쟁까지 겹쳐 남북의 살육전에서 동서의 칼끝 위 대립처럼 아직까지 죽고 죽이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적 아닌 적이 되어 서로를 말로 죽이고, 글로 죽이고, 구호로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국은 예전과는 다른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청교도들의 이민사는 슬픔과 불행을 딛고 일어선 희망의 역사입니다. 한인이민사 역시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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