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입고 먹고 자는 의식주의 해결에 초점을 두고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경우 아무리 바빠도 의식주만 가지고 살면 허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삶을 가만히 보면 바쁜 생계 속에서도 무언가 다른 무엇을 찾아 열심히 하고 추구하고 또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의욕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는 그런 것들이 어떤 결실을 이룰 때 삶의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 하고 보람을 갖는다.
한인 사회에는 알고 보면 이런 부류의 한인들이 생각 외로 많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서재필 기념재단의 정 홍택(65) 회장이 아닌가 싶다. 정 회장은 한마디로 삶의 수단이자 터전인 직장에서 성공하는 인생을 살았지만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취미나 봉사생활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며 살아온 한인이다. 그의 미국생활 30년을 돌아보면 이 것 저 것 참 많이, 부지런히,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본인이 갖고 있는 남다른 성취욕과 열정,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과 갈망, 그리고 진취적인 사고와 실천의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아남 반도체 회사에 말단 사원으로 들어가 사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분주한 생활을 하면서도 연극공연과 사진촬영, 문화 활동 등에 심취하면서 강연, 봉사 외에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여 자신의 삶의 질을 높였다. 이것은 인간답게 살고 싶은 그의 욕망이고 의지였다. 그래선지 그의 인생
기를 하나하나 들어보면 취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 회장의 미국생활은 1968년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업무부서에서 3년 일하다 70년 아남 반도체 회사에 입사, 76년 미주 지사로 발령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아남 반도체와 인연을 가진 것이 33년, 미주에서 활동한 것만도 27년이다. 그 사이에 거둔 열매도 많
지만 연륜도 깊어져 이제는 인생을 많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관조하며 마무리를 시작하는 단계를 맞고 있다.직장인으로 사다리를 계속 타면서 사장까지 했으니 그의 생활태도가 정직하고 성실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정 회장이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는 서로가 그냥 ‘이군’ ‘정군’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불렀고 회사사원 번호가 16번이 다였는데 이제는 수천대까지 갔으니 엄청나게 규모가 팽창한 셈이다.
정 회장은 직장생활 성공을 정직과 성실도 물론이지만 사원간의 화목이 제일인 것 같다고 귀띔 한다. 그는 항상 사원간의 친선과 우의를 중요하게 생각, 무슨 일이든 다 자부심을 갖고 재미붙여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한다. 정 회장에 따르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할 때 일방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옳지 않다. 무엇이든 서로가 다 좋게 ‘윈 윈 게임’쪽으로 가는 것이 모두가 일할 때도 재미있고 집에 와서도 좋은 생각을 하며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가장이 직장에서 기를 펴면,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긍심이 있으면 집에서도 자신 있게 가족을 이끌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가정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무엇이든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정 회장은 강조한다.
그러나 정 회장은 직장생활의 성공에서 안주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의식주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 것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하면서도 영화를 좋아했으며 소설을 썼고 시를 즐겨했다. 그 뿐인가, 연극까지 함으로써 지식뿐 아니라 인간적인 폭을 넓혀가면서 사람을 키워나가기 위한 폭넓은 수련의 길을 걸어갔다. 그는 82년부터 연극대본을 쓰고 연출하여 필라델피아 연합교회 후원으로 ‘위대한 야망’ ‘아버지의 마음’ ‘크리스마스 이브에 생긴 일’ ‘남남북녀’를 공연하였다. 또 사진촬영에도 심취
해 웨체스터 카운티주최 사진대회에서 3위 입선, 뉴욕한국일보 주최 사진대회에서도 4위에 입선한 바 있다. 그는 문학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 한국수필문학에 등단했으며 그의 60평생 인생역정기가 내포된 수필 ‘손자를 기다리며’ ‘자전거 인생’ ‘주인의식 손님의식’ ‘아버지’ 등을 기고했다. 동화대본 ‘붕어 두 마리’ ‘파치가 사는 길’도 썼으며 영화 감상 평론까지 다양하게 활동했다.
그것은 자신의 만족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이 운영하는 것이므로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인간관계가 잘 돼야 업무도 잘된다는 원리 때문이다. 덕분에 거래하는 회사들이 그 사람에 대해서 칭찬해주면 회사 내에서 칭찬하는 것 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했더니 처음엔 남보다 승진이 늦는 것 같았으나 종국에는수십명이 같은 시기에 입사했어도 수장은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 것이 바로 정 회장 자신이었다. 회사생활에서 갖가지 중상모략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어려움을 다 견디고 마지막까지 영예롭게
사장으로 직장을 마감했다.
아남사에 입사하게 된 동기는 창업자를 어느 날 찾아가 “나는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해서 온 게 아니라 가서 훌륭한 사람 있으니 만나라. 그래서 왔다”고 했더니 회장이 자기 인생관을 두 시간에 걸쳐 이야기 해주면서 “다음 주부터 일하러 오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정 회장이 “그건 안 된다”고 했더니 “그럼 한 달간 기간을 줄 테니 그 때 들어오
라” 해서 간 것이 결국 사장까지 된 것이다. 아남은 초창기 반도체 부품을 해외에서 사들여 조립해서 다시 해외에 수출, 한국 최초로 반도체공장을 설립한 회사이다. 이 회사의 첫 수출실적은 27만 달러, 그러나 지금은 수십억 달러의 규모로 성장했다. 그는 상과를 나와 사람들이 말하기를 “상과 나온 사람 맞느냐?”고 할 정도로 숫자에 약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정상을 향해 열심히 질주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먹고 사는 것은 정통으로 하면서도 과외로 문화 활동에 더 많은 노력과 신경을 기울여 왔다. 그 때문에 회사 직원들에게 그가 색다르게 비쳐지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밀어주고 도와주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인생의 깊이도 깊어지고 폭도 넓어지고 이제 와서 보니 시간을 항상 의식하며 밀도 있게 보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그는 늘 바쁘게 지내왔다. 미국에 오기 전인 38세 때 그는 우연한 기회에 교회를 나가면서 40세에 성령세례를 받고 신학교 야간부에
입학, 2년간 마칠 정도로 종교에 심취했다. 지금도 그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에서 장로 및 당회 서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아남에 몸담고 있을 당시 주미 한국상공회의소 부회장에 이어 회장직을 맡아 일하면서 유펜대 겔러리에서 한국 고대 박물관 소장 이조선비 화가들의 묵화를 3개월간 전시하는 등 문화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은퇴 후에는 서재필 기념재단의 회장 및 CEO로 취임, 2년간 24만 달
러의 기금을 모아 한국정부 보조 16만 달러, 총 40만 달러를 들여 서재필 기념관을 설립, 국내외 동포들을 맞을 준비를 이미 끝낸 상태이다. 최근에는 또 3년간의 준비 끝에 필라델피아 한인동포은행 ‘모아뱅크(More Bank)’를 설립하고 이사장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인생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살아 후회는 없다, 이제껏 살아온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져 앞으로도 계속 인도해 주실 거라 믿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 가겠다”고 말하는 정 회장, 이제부터 남은 인생 또 무슨 일에 심취할지 궁금하다. 그는 지금 3년7개월간 서재필 기념재단에서의 활동을 총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서재필 기념관 가보기 운동’의 일환으로 뉴욕에서 서재필 기념관까지 뛰는 150마일 완주(뉴욕한인마라톤클럽)마라톤대회 준비에 막바지 열을 올리고 있다. 가족은 부인 민경애씨와의 사이에 출가한 두 딸 패트리샤(36)와 사라(34)씨가 있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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