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갓 처럼 방랑하며 시심을 화폭에….’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는… 괴나리봇짐 등에 지고 방랑의 노스탤지어… 시심을 랑데뷰시키고 싶다. 문화(예술)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람처럼…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것이다. 세계와 어우러지는 것… 짬뽕과는 또 다른, 자연스럽게 화합하고 또 탄생하는 문화…, 이것이 진짜 문화이다. 이제 이민자들은 예술가든 평인이든 자신들을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
동양화가 이명수 화백(리 아트 갤러리 대표)이 늦가을이 되면 미국(대륙)을 유람하며 풍경을 화폭에 담고 싶다며 예술가로서의 방랑의 욕구를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지난 20일 본보와 인터뷰를 가진 이명수 화백은 65년 홍익대학교에 입학, 동교에서 조교로 활동하다 80년 도미, 남가주와 북가주를 오가며 자연과 합일되는 작품을 화폭에 옮겨오고 있다. 2002년 부터 산호세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예술의 범위를 확대, 벽화 등으로 대중과의 교류, 만남의 갈급함을 토로해 오고 있다. 산타클라라 소재 ‘길목식당’, 밀피다스의 ‘오이시 스시’, 오클랜드의 ‘예당’, ‘오가네 식당’ 등에 가면 이 화백의 벽화를 만날 수 있다.
1990년 남가주를 벗어나면서 방랑의 길을 걷게 된 이화백은 뉴욕에서 판화, 서양화 등을 공부하며 화풍의 혁신을 꾀하기 시작한다. 예술가에게 지워진 고전스타일이라는 무거운 짊에서 벗어던지고 나만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화백에게 예술가로서의 정해진 길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하려는 노력, 충만한 의욕이 필요하다는 이 화백은 예술적 인격은 무엇보다도 여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네것 내것, 명예욕,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삶… 재미있고 미치는 삶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대중과 만나기 위해 쇼핑몰, 식당 등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 화백은 자신의 작풍을 ‘필무(筆舞)’라고 규정한다. 즉 붓을 들고 춤을 춘다는 것. 2001년 마리나 지역 샤핑몰의 부동산 중계인 권기홍씨와의 만남으로 상업용 빌딩의 벽화제작의 시작이 됐다는 이 화백은 이후 새크라멘토 ‘오즈 갈비’를 시작으로 베이지역 식당에도 벽화를 그려오고 있다. 벽화를 그릴 때면 마치 불교에서의 면벽 수련과 같은 자신과의 투쟁이 느껴진다는 이화백은 우리 미술이 무엇이냐? 백번 말하는 것 보다는 붓춤으로 해결하고있다며, 오가네 식당 등에 우리의 역사문제를 대두시킨 고구려 수렵도 등을 그리게 된 동기를 말했다.
한인 사회도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 뿐만이 아니라 눈과 귀로 감동받는 것이 필요할 때가 됐다는 이 화백은 문화를 경외시하는 풍조를 없애고, 예술가… 특히 그림 그리는 사람(화가)를 사랑해주는풍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리 화랑’에서는 9월 중순 부터 북가추 최초로 산호세 제일 침례교회에서 아동 교실을 실시해 오고 았으며, 장수 보건 센터에서 70세 이상의 아마추어 화가 들의 작품전시회를 주관할 예정이다. (408)712-4925
<이정훈 기자>
junghoon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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