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교향곡)’은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곡이었다. ‘운명’처럼 투쟁과 극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아니었지만 ‘전원’속에 깃든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실존의 투쟁이 녹아있는, 나름대로의 작은 ‘운명 교향곡’이었다. 물론 이 작품은 단순하게 듣는다면 전원을 산책하며 받은 영감을 기록한 표제음악일 뿐이다. 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기분’, 2악장- ‘시냇가의 정경’, 3악장 – ‘농부들의 즐거움’, 4악장 – ‘천둥과 폭풍우’, 5악장 – ‘폭풍우 뒤의 기쁨과 감사의 기분’ 등 매 악장마다 표제가 붙어 있는 것도 베토벤의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게 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자세히 들어보면 인위적인 냄새가 가득하다. 물론 유치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계(비발디)’ 등 다른 표제음악들과는 다르게 단순한 자연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1악장의 경우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기분-이라는 표제가 매우 애매모호하다. 과연 시골에 도착해서 베토벤과 같은 ‘전원’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인간이 숲속에서… 혹은 항해에서 길을 잃었을 경우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나침판이다. 그러나 나침판이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은 인생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이다.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참새… 갑작스레 닥친 운명… 예상치 못한 풍랑… 좌초된 삶… 병마… 인생이 감당하기 힘든 짊으로 다가올 때 인생이 의존할 수 있는 나침판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신을 찾을 것이고… 철학과 도덕에서 해결점을 찾으려고 부심할 것이다. 혹자는 죽음(자살)을 생각한다. 귓병에 시달리던 베토벤 역시 죽음만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을 결심한 경우였다. 그러나 베토벤의 자살을 막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좌절하게 만든 음악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러므로 베토벤의 경우 음악은 외부에서 들려왔다기 보다는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베토벤의 자연에 대한 감사가 표현됐다는 ‘전원 교향곡’을 한번 들어보자. 이곡을 과연 전원에 소풍나간 느낌을 표현한 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베토벤의 전원이야말로 존재에 대한 감사… 전 존재를 통한, 전원 속에 깃든 신에 대한… 자연에 대한 경외가 표현된 곡이다. 인간이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 또 음악으로 나침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 얼마나 벅찬 감격이요, 환희… 실존의 승리인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누구나 좋아하는 곡이다. 베토벤이 38세 때 작곡한 곡으로 유서를 썼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작곡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귀은 이미 완전히 먹어 버린 상태지만 베토벤은 이곳에서 남다를 감회를 느꼈는지 자연에 대한 감사, 행복한 감정으로 승화된 5악장의 표제음악을 완성하게 되었다. 베토벤의 곡중에서 가장 걸작 중의 하나라고 알져진 이 곡은 불란서의 문호 로망롤망이 ‘운명’과 더불어 “전원이 없다면 세상은 무지개 없는 하늘이 될 것이라고 평한 곡이다. 베토벤만이 전할 수 있는 승화된 새 천지라고나할까. ‘사계’등 당시까지 전해오던 전원음악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마치 전원 속에서 한 마리의 사슴이 되어… 자연 속에 하나 된 감정이라고나할까… 어딘가 설레이는 듯하면서도 장중한 무게로 이끌어지고 있는 이곡은 음악만이 전할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기쁨… 감사의 감정… 환희로 뛰놀게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답답한 가슴… 무미건조한 느낌에 처해 있다면 그래스에 와인을 한 잔 따라 보시라. 그리고 베토벤의 ‘전원’을 한번 전축에 걸어 놓아보시라…. 세상이 얼마나 보는 사람에 따라서 어둡고 슬픈 황혼…, 장엄한 황혼으로 변하는 지 알 수 있으리라. 베토벤의 음악(전원)은 장엄하다. 마치 붉게 타오르는 하늘… 무수한 갈매기… 황혼에 반사된 청록의 나무…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온다고나할까. 와인처럼 붉고… 와인처럼 타들어가는 전원의 향기… 도취가 없는 세상은 무미하고 건조할 수 밖에 없다. 살아 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삶…, 동물적인 맹목성…, 양보없는 전투…, 먹기 위한 아귀다툼일 뿐이다. 니체는 ‘음악을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조차 말라’했다. 지성(음악)만을 추구하자는 말이 아니다. 끝없는 실존의 고통… 끝간데 없이 뻗어만 가는 이기심… 욕망의 고(苦)를 용광로 속에 용해, 흡수시켜 태양 광선처럼 거듭나자는 얘기다.
베토벤은 참으로 많은 유산을 남긴 작곡가였다. 특히 9편의 교향곡은 언제 들어도 다른 기분으로 와 닿는 용기와 승화의 감정을 안기는 명곡이다. 얼마전 우연히 베토벤의 ‘전원’을 리스트가 편곡한 피아노 곡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리스트는 베토벤이 남긴 9편의 교향곡을 모두 피아노로 편곡 그 기분을 색다르게 표현한 바 있는데 ‘전원’이야말로 가장 압권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물론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명연주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한치의 기교도 가미됨 없이 오로지 정신으로… 음악속으로 투쟁해 나간 악성 베토벤의 위대성이 있기에 가능한 감동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듣는 ‘운명’…, 무거운 마음으로 거꾸로(?) 듣는 ‘전원’이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도 베토벤만의 전할 수 있는 위대성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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