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 ■ 구미호 가족 - 노래·춤과 결합 ‘독특한 시도’
별주부전 등 패러디 아이디어… 이야기와 따로 놀아 아쉬움도
천년을 기다리며 한결같이 인간이 되기를 기다려온 구미호 가족-아버지와 큰 딸, 아들, 작은 딸-은 천년이 되기 꼭 한달 전 인간들로 북적이는 서울 도심에 나타난다.
인간의 싱싱한 간을 먹으면 진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품은 어수룩하고 소심한 ‘아버지 구미호’(주현), 섹시한 외모를 가졌지만 발정에 가깝게 남자를 밝히는 ‘큰딸 구미호’(박시연), 아버지와 티격태격하는 단순무식한 ‘아들 구미호’(하정우), 속을 알 수 없는 ‘막내 구미호’(고주연) 등은 서커스장을 개업하고 본격적으로 인간 홀리기에 나선다.
그러나 천년동안 인간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고, 어리숙한 구미호 가족은 되레 인간들에게 당하기만 할 뿐이다. 이때 사채업자를 피해 우연히 서커스장으로 피신한 사기꾼 기동(박준규)의 제안으로 구미호 가족은 신입단원을 모집해 인간들을 수집하기로 한다.
꼬리가 아홉개 달린 구미호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한 ‘구미호가족’(감독 이형곤ㆍ제작 MK픽처스)은 한국영화로선 드물게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작품이다. B급 호러 뮤지컬의 ‘바이블’로 불리우는 할리우드 영화 ‘록키 호러 픽처쇼’처럼 비틀고 쥐어짜는 장기를 보여준다. 뮤지컬의 재치가 빛나는 엽기 코드를 구석구석 배치해 고약한 웃음을 선사한다.
영화 ‘구미호가족’은 서커스단을 만든 구미호 가족이 인간사냥에 나선다는 독특한 발상과 뮤지컬의 유쾌한 조합으로 조폭 등 한쪽으로 치우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장르 개척을 시도한 점에서 기특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물과 기름처럼 드라마 장면과 뮤지컬이 따로 노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야기와 이야기를 잇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뮤지컬 장면들이 매끄럽게 넘어가지 못하고 마치 영화 속의 또 다른 이야기처럼 공중에 붕 떠버린다.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에 묻혀 일부 뮤지컬 장면들은 망각의 강을 건넌다.
큰 틀로 작용한 이야기는 어색하지 않지만 강약의 리듬을 살리는 뮤지컬을 만드는 데 부족함이 느껴진다. “전통적인 뮤지컬 대신 ‘헤드윅’같은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는 이형곤 감독의 의욕은 자칫 과잉이어서 용기있는 시도가 빛을 바랬다.
영화 ‘구미호가족’의 가장 큰 매력은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를 영상에 옮겨다는 점이다. 소재조차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는 동서양 동화들의 거친 패러디를 통해 숨은 웃음거리를 찾게 한다. 토끼의 간을 빼앗으려는 용왕에 맞서 아이디어로 목숨을 부지하는 ‘별주부전’의 토끼처럼 기동은 부족한 간의 수를 맞추기 위해 (제물이 될) 신입단원 모집이라는 깜짝 아이디어를 낸다.
또 토막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막내딸이 빨간 레인코트를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자신을 쫓는 형사를 피하는 장면은 그림형제의 동화 ‘빨간 모자’를, 싱싱한 간을 얻기 위해 신입단원들에게 한약까지 달여 먹이는 구미호 가족의 정성 어린 모습은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의 복제다. 보름달이 일식으로 가려지는 밤 천년을 기다려온 구미호 가족이 인간의 간을 손에 쥐던 찰나 울리는 알람 소리는 열두시 종이 치자 마법이 풀릴까 헐레벌떡 달아나는 ‘신데렐라’와 꼭 닮았다.
영화의 큰 힘이 되는 것은 배우들 덕분이다. 주연과 조연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호흡의 일체를 보여준 연기가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스트립쇼를 연상케 하는 섹시 댄스를 추며 스크린 신고식을 마친 박시연은 추석 극장가의 진짜 ‘여우’가 될 조짐이다. 가끔씩 등장하는 변태적인 성도착적인 장면은 눈에 거슬린다. 주현과 박준규의 깜찍한 상반신 노출은 보너스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현아 기자 lalala@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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