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은 자기 신분에 대하여 한 번쯤은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미국 땅에 수십 년을 살아도 마음속에 내 나라가 어디인가 라는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자기 신분에 대해 흔들거리며 사는 것이 우리 이민자들의 모습이다. 심지어 이민 2세대 중에서도 자기의 신분(Identity)에 대해서 혼동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피는 한국인의 피이면서도 사는 문화는 미국 문화 속에 사는 한국인들이 자기의 나라가 어떤 나라이며, 자기들의 고향이 어디인가 정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 살다가 한국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 중에 공기가 탁하다, 복잡하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공기가 탁하고,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그렇게 참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좁은 땅에서 많은 인구가 모여 살다보면 당연히 복잡하고, 공기가 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탁한 공기와 복잡함이라는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먼저 큰소리를 치고 싶을 정도로 시집간 딸이 친정집을 방문하는 것처럼 편안함과 안락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것도 문제가 아니고, 탁한 것도 큰 문제가 아니다. 바로 그 땅이 내가 태어난 한국이고, 내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밟고 다녔던 땅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랑스런 조국인 것은 틀림이 없다. 아프면 신음소리 낼 수 있고, 화가 나면 소리 칠 수 있고,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속 시원하게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할 수 있는 편한 나라가 바로 한국인 것을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세계 나라들 중에 한국만큼 변화가 빠른 나라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에 어느 정도 적응된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약간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마치 시골 살다가 서울 구경나온 노인처럼 앞과 뒤를 모르고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어 마치 딴 나라에 온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킬 때에도 뭐가 뭔지 몰라서 일일이 물어야 하고, 달러와 원화의 환율을 생각하면서 값이 비싸냐, 싸냐 하며 계산을 해야 하는 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되어 버렸다.
그 많은 7천만의 한국인들 중에서 선택을 받아 미국에 와서 살게 된 것이 자의이던 타의이던 간에 누가 뭐래도 이민자라는 신분인 것만은 부인할 수없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이도 함께 먹어 인생의 마지막을 미국에서 장식할 수밖에 없는 하늘의 뜻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 이민자의 나라는 마음에 품고 있는 나라이기보다는 내 몸이 머물고 있는 땅이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나라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다가 떠나온 한국은 나라라는 의미보다는 고향이라는 의미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야 할 땅은 이곳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앞만 바라보아야 한다. 아무리 그리워 뒤를 돌아보며 한국을 생각해 보아도 그 땅은 나의 조국인 것만은 분명한데 내가 살아가야 할 땅, 나라가 아니다. 단지 고향일 뿐이다. 언제나 가고 싶고, 밟고 싶은 구수한 땅, 바로 그곳이 우리의 고향, 한국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세기 12:1-3)
우리가 살아야 할 땅이 미국이라면, 우리의 고향은 한국이다. 우리의 고향 땅인 한국이 잘되고,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미국이 잘되는 것을 바라고 사는 것, 바로 이것이 이민자가 품고 있는 두 개의 사랑인 것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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