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서 아름다운 별을, 생애에 한번이라는 그 장관을 포기한 내가 월드컵기사를 기다리지 못해 칠혹의 어둠 속을 배회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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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불가사의한 인생여정 앞에 무릎을 꿇으며 삶이 지속되는 한 NEVER SAY NEVER임을 확인에 확인을 했다
LOVE LETTER에는 호나우도의 열일곱 살 모습도 적혀 있었다. ‘고속도로를 초고속 탱크처럼 질주하며, 상대선수들을 마치 가로등처럼 속속 뒤로 밀어내며, 하나하나 명품 골을 빚어냈다’. ‘제 발로 찬스를 만들고 제 발로 골을 마무리 했다’. ‘제비 날개처럼 양팔을 펴고 골을 넣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여봐란듯이 관중석 앞으로 치달리던 골 세레모니’. LOVER LETTER는 이어졌다. 그러한 그가, 가는 청춘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오랏줄로 옭아맨들 청춘이 아니가고 백발이 아니오랴. 하지만 하나같이 월드스타인 동료들 덕분에 다른 팀의 외로운 별들처럼 중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신의 은총으로 받아드려야 할 처지라고. 한 인물로 배우들의 야코를 팍 죽였다는 피구에 대해서는 ‘그 생고무처럼 탱탱한 다리로 터치라인을 따라 질풍처럼 내달리다 느닷없이 안쪽으로 꺾어 문전을 후비거나 도무지 각이 없는 지점에서 절묘하게 휘들어가는 크로즈를 올리면 상대팀의 억장은 무너지고 자기 팀이나 제 3자 구경꾼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그리고 지단, 유럽의 어느 눈밝은 축구기자가 지단 스토리의 첫 머리를 장식했던 것을 인용해서 썼다. ‘특유의 엷은 미소를 띠며 기자 회견장에 막 들어서던 그가 뒤뚱거렸다. 반들반들 카펫에 스텝이 엉킨 것이다. ‘그 사나운 축구장 잔디에서는 아무리 붙들고 걷어차고 가로 막아도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며 발레하듯 물 흐르듯 경기를 조율하는 이 곡예사가 기자회견장 카펫에서 넘어질 뻔했다’. LOVE LETTER는 내가 선택한 별들이 진정으로 별들임을 설명해 주었다.
“월드컵 기사는 이태리의 승리와 득점왕 등 몇 가지 예측기사를 끝으로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 선생님 때문에 자꾸만 LOVE LETTER가 써지네요”.
나도 계속 기다렸다. 어느 날은 신문이 배달 될 새벽 7시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한 밤중에 차를 몰고 나가 가판대에서 신문을 뽑아 읽었다. 이렇게 되다니, 내가 이렇게까지 되었다니. 한 밤중에 별을 보라는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가 무서워서 되돌아 들어온 나였다. 무서워서 아름다운 별을, 생애에 한번이라는 그 장관을 포기한 내가 월드컵기사를 기다리지 못해 칠혹의 어둠 속을 배회하다니. 2010년에는 남아국의 월드컵 관중석에 앉아 있을 내가 이미 보였다.
나는 이 불가사의한 인생여정 앞에 무릎을 꿇으며 삶이 지속되는 한 NEVER SAY NEVER임을 확인에 확인을 했다. 그리고 이 불가사의한 인생여정 속을 어떻게 지금까지 왔는지를, 잔디 위의 어린 소녀를 보며 돌이켜 보았다. 나의 월드컵 별들의 어릴 적 사진 들을 신문에서 바라보며 단발머리 꼬마인 나를. 그러고 보니 6월은, 7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 였다. 문학만이, 아니, 음악과 그림과 발레와, 아름다운 온갖 자연의 모습들이 하모니를 이룬 세계만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살아온 나에게, 세계를 단숨에 한 곳으로 모으는 절대의 예술이 스포츠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달이었다. ‘마르세유 턴’이라는 지단의 화려한 개인기와 농익은 플레이가 젊음의 패기를 압도하며 노련미의 극치를 펼치는 순간을 경험했고 경탄한 감격의 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독일 월드컵은 인생을, 삶을 생각하게 한 교훈의 달이었다. 7월이 지나면 다시금 나는 요요마의 첼로연주를 들으며 나의 작은 외삼촌을 그리워할 것이고, 이병주의 소설을 읽으며 그와의 함께한 날들에 잠길 것이다. 이렇게 겉으로는 나의 일상의 모습들이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중에 느끼고 얻은 삶의, 인생여정의 생각들은 많은 교훈으로 내 가슴에서 자랄 것이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울고 있는 것 아냐?”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연희의 음성은 독일의 월드컵 구장에서부터 굴러오는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대굴대굴 공이 구르듯 이어서 물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경기, 그 명화가 끝난 자리에 내가 있고 너희들이 보여서…”
나도 공을 굴리듯이 대답했다.
“그 구장이 예산역의 잔디가 되어, 기차가 나의 외삼촌을 태우고 떠나던 그 날의 그 잔디 위에 우리들 꼬마가 있어.”
“전설같은, 아니, 신화같은 아득한 그 날이 왜 떠오르는데? 네 스스로 말했다. 이번에 한국 갔을 때 예산을 들러보니 이제는 전설이 되었다고….”
연희와 나 사이로 전화선을 타고 공은 멈추지 않고 굴렀다.
“우리들의 전설이 이어지고 있어. 세계의 잔디 위에서 재연되고 있다니까.”
“큰일이다. 월드컵은 제대로 두 경기가 남았는데 너, 병이 걸려도 단단히 걸렸구나.”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바래면 신화가 된다’는데 우리들의 전설은 무엇에 바래서 무엇이 되는걸까?”
“이병주 어록을 말하는 걸 보니, 치료의 가능성이 있어 다행이다.”
“그 양반 때문에 몇 년만 만에 한국을 간 나다. 제주도로 예산으로 두루두루 다닌 것도 그 양반 때문이 아니겠니? 외삼촌의 어록만큼 그 양반의 명언들은 나의 세포 속에 있다. 무의식 속에서도 언제나 발레를 한단 말이다.”
“네 입에서 ‘발레’ 소리가 언제 끝날지…, 내가 아닌 바로 네가 발레리나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이 맑고 투명해서 전염이 잘 되지 않냐?”
“왜 안 그러겠니. 네 방에 진열된 크리스탈들이 침묵할 정도지.”
“그런데 너는 왜 자꾸 전화를 하니? 당분간 통화하지 않기로 했잖아.”
“알아듣기 힘든 환자의 중언부언을 나도 듣고 싶지 않다 만은, 지수가 일주일 늦어질 거라고 전화를 했다. 네 전화는 응답기만 돌아간다고 내게 했다.”
“그럼 김지훈과 박정민도 늦어지는 거니?”
네가 이지경이 되어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이 우리들의 연중모임이 늦추어진 거다. 연희의 공은 계속 굴렀다. 그 때쯤이면 너의 병도 나아질거고.
“하여간에 전설은 어떻게 이어지는데? 예산을 다시 가보니 모든 것은 지나갔다고 네가 점을 찍었다. 우리들의 집도, 거리도, 학교며 교회며…, 무엇보다 역의 잔디는 손바닥만 하다고, 우리들의 모든 과거는 기억 속의 전설이 되었다고 네가 접었단 말이다.”
“월드컵 탓이다. 삶을 불가사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들의 일생을 돌이켜 보게도 하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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