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동시대를 엮어주는 매개체-
몇 년 전 경상북도 영주시라는 중소도시에서 아주 조그마한 행사가 열렸다. 일명 ‘추억의 운동회’였다. 조금은 특이한 운동회였기에 매스컴을 타기도 했을 정도로 반향을 일으킨 운동회였다.
그 운동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70이 넘은 할아버지부터 20대 후반의 젊은이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참석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부자간, 모녀간, 혹은 부부간에 함께 참석한 경우는 많이 보았다. 바로 영주시에 위치한 동부초등학교 총동창회 주관으로 전국에서 처음 실시한 ‘추억의 운동회’ 모습이었다.
운동회를 준비한 준비위원장은 방송에서 “어린 시절 함께 뒹굴며 뛰어 놀던 동무들과 추억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싶었다”고 말한 뒤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생사조차 몰랐던 옛 동무들을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나도 많이 만난 것이 더욱 더 의미가 있는 일이다”며 소감을 얘기하는 것을 봤다.
몇 일전 산호세에서는 이에 버금가는 추억의 시간 여행이 벌어졌다. 바로 ‘7080 빅 콘서트’가 바로 그것이다. 기자와 얘기를 나눈 많은 분들이 젊은 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서 구경을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북쪽으로는 새크라멘토로부터 남쪽으로는 몬트레이까지 참으로 먼 거리에서 많이도 찾아주었다. 구경 온 사람들의 마음들을 속속들이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결국은 추억 속에 빠져들기 위해, 그 옛날 젊은 시절의 과거로 돌아가보기 위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또한 7080 콘서트를 통해 수십 년 만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는 경우도 실제로 생겨나기도 했다. IT기업인 SNT를 경영하고 있다는 이상원씨는 이번 7080멤버로 따라온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 밤새도록 술로 회포를 풀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기자는 콘서트가 끝난 후 7080멤버들의 뒤풀이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 본시 기자는 그들이 연예인들이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생활수단을 위한 방편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 예측은 보기 좋게 비켜나갔다.
“이곳에 구경오신 분들이 추억을 되새긴다고 말씀하시지만 정말 우리들이야 말로 그 옛날의 추억에 취해서 노래를 부른다”며 그들 역시 다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추억을 그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어니언스의 임창제씨는 “우리의 노래들을 듣고 추억을 그리며 추억에 젖는 분들을 볼 때 우리 역시 옥슨80, 장남들, 어니언스로 돌아가게 된다”며 자신들 역시 그 옛날의 추억에 목말라 했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눈물로 쓴 편지’와 ‘나비소녀’ 등을 불러 뭇 남성들의 가슴을 태우기도 했던 김세화씨 역시 “이런 행사를 통해 노래를 부르는 내 자신조차도 노래 속의 나비소녀가 되어 옛 추억을 느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미주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7080콘서트는 조국을 멀리 떠나 외로움에 지쳐있는 한인 동포들에게 힘든 미국생활을 하루 정도는 잊어버린 채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하는 것”이라며 7080콘서트의 의미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한 뒤 “오늘 콘서트에 오신 분들이 우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환호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뻤으며 보람을 느낀다”고 해맑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기자는 이날 행사가 끝난 후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마음속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렸다는 참석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70,80년대의 추억을 함께 갖고 있는 분들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 혹은 인근에 이처럼 많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생활이 외롭지 만은 않음을 깨닫게 해준 7080멤버들이 고맙게만 느껴졌다.
“고생했던 추억도 지나고 보니 상쾌하다”라고 한 에우리피데스의 말을 들추지 않더라도 역시 추억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광희 기자>
kh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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