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예정으로 미국에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가족이 처음 미국에 올 때 다시는 못 만나는 줄 알고 많이 섭섭해 하셨는데 지금은 미국에 다니러 와서 어머니와 함께 지난 이야기를 하시다 가셨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으로 이민 간다니까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단다. 떠나올 때 내 손을 꼭 잡으며 어디에 있든 건강하라며 밥은 꼭 한 그릇씩 먹어야 한다던 그 누님이 미국에 왔다.
미국에 온지 며칠이 지나자 식품가게에 가자고 하신다. 나는 누님을 모시고 식품가게에 갔다가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누님은 배추 3박스 무 2박스 오이 200개 열무 80단에 얼갈이라고 했던가 작은 배추도 상당히 많은 양을 샀다. 갖은 양념을 사가지고 나오니 자동차 트렁크로 가득 차 더 집어넣을 자리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왜 이렇게 많이 샀느냐고 물으니 대답은 미국에 와서 먹는 것을 보니 한심하기가 그지없었다고 한다. 한국사람은 한국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와서 먹는 것을 보니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곳생활이 바쁘다 보니,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부부가 맞벌이로 돈을 벌어야 하기에 음식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다.
가게에서 사다먹는 음식이 우리에게는 이제 익숙해져 가는데 그래도 어디 집에서 담가 먹는 그 맛에 비교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누님의 입맛에는 맞지를 않는 것이 당연하다. 김치를 많이 해서 아는 사람과도 나누어 먹고 김치찌개도 해먹고 만두도 해먹고 그래야 사람 사는 것 같지 않느냐는 누님의 말씀에 왠지 낯설지만 않다. 그 후로도 몇 차례 김치를 하고 여러 가지를 만들어 조카들도 주고 아는 친지도 잡수어 보시라고 드리고 초대도 하여 음식도 같이 드시고 하였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맛보았던 한국음식이라고, 고향생각이 나는 음식이라며 맛있게 들고 가시는 친지들 연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신다.
한국에 있을 때 우리누님은 통이 큰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누님은 김치를 한번 해도 여느 집 김장하는 것 보다 많이 했다. 숙모님도 드리고 고모도 드리고 막내누이도 주고 나는 남동생이라고 좀 더 많이 준다. 어디 비단 김치뿐이랴.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사면 주변의 친척집에 챙겨주느라 바쁘다. 우리가 그러다 살림이 거덜나겠다고 하면 없는 형편이 모두 아는데 아무리 없더라도 정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누님이셨다.
누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아무도 없는 미국 땅에 처음 왔을 때 주변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던 분들이 새삼 생각이 난다. 처음 미국에 와서 긴장하며 살았던 그 시절, 뒤돌아볼 시간도 없이 앞 만 보고 뛰어가던 그 시절, 우리를 도와주시던 모든 분들께 그때는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못했는데 누님이 미국에 와서 깨우쳐 주시는 것 같다.
정말 처음에는 무엇을 사러가기도 겁이 났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과 같이 가면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는데 유독 혼자만 가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두려움이 앞서고 가족과 함께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 답답했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시던 분들이 생각이 남다. 우리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내 집일처럼 우리를 도와주시던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니 이제는 새로이 미국에 이민 오는 그들에게 우리가족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우리 가족도 다짐을 하면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신 우리누님 언제나 건강하시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라며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한 우리매형의 빠른 쾌차를 빌며 우리가족을 위해, 아니 우리를 알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희망을 주는 우리 누님이 되어주기를 기도 드립니다.
박용수/게이더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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