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팀과 스페인 간의 8강 전 승부차기에 사용됐던 볼이 4년 만에 한국 축구팬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태극 전사들은 2002년 6월22일 광주월드컵 경기장에서 스페인과 가진 8강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해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꺾고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만들어냈다.
당시 5번째 키커로 나선 홍명보(현 국가대표팀 코치)가 우리 팀의 4강 진출을 확정짓는 골을 넣어 `홍명보 4강 볼’이란 별명이 붙은 이 공은 당시 주심을 맡은 가말 알-간두르(48ㆍ현 이집트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씨가 보관하고 있었다.
간두르 씨는 9일 주 이집트 한국대사관에서 4년 전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던 이 공을 최승호 대사에게 기증했다.
이 공이 한국 축구팬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된 데는 축구자료 수집가인 이재형(45ㆍ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 기획부장) 씨의 공이 컸다.
2004년 에콰도르를 찾아가 한국-이탈리아 16강전 주심을 맡았던 비론 모레노를 설득해 안정환의 골든볼을 받아온 주인공인 이씨가 `홍명보 4강 볼’ 찾기에 나선 것은 2년 전부터다.
이씨는 수소문 끝에 이 공을 간두르 씨가 보관 중임을 확인하고 수차례 e-메일을 보내 공을 기증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자신이 주심을 본 6경기에 사용된 볼 6개를 소장한 간두르 씨의 반응은 차가웠다.
8강 전 후반 3분에 스페인팀이 기록한 반칙 골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한국 언론이나 축구협회가 자신을 제대로 옹호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월드컵 8강 전의 승자를 결정한 볼은 간두르 씨 개인적으로도 자손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소중한 물건이었다.
이씨는 그런 상황에서 간두르 씨를 직접 만나 설득해 보기로 하고 무작정 카이로로 날아왔다.
지난 7일 카이로 외곽에 있는 간두르 씨의 자택을 찾아간 이씨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4시간에 걸친 설득노력을 기울였다.
이씨는 간두르 씨에게 이 공이 개인적으로 소중한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인들을 위해 기증해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그는 또 간두르 심판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과 함께 이 공을 모든 한국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박물관에 전시하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돈을 벌면 이집트 축구심판학교를 후원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씨는 더불어 스페인 언론으로부터 오심 스캔들에 시달려온 간두르 씨의 명예회복 노력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이씨의 진지한 태도에 마음을 움직인 간두르 씨는 결국 공을 내놓았다.
간두르 씨는 기증식에서 이 공은 나에게도 소중해 이씨의 요청을 처음엔 거절했다며 그러나 직접 찾아온 이씨로부터 `한국인들에게 매우 귀중한 볼’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 보다는 한국인에게 가치가 클 것이라고 생각해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8강 전의 오심 논란에 대한 소감도 피력했다.
그는 내 이름을 인터넷에 넣어 검색해 보라. 스페인 언론은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가 오심을 했다고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이나 축구협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가만히 있으면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스페인 측의 부당한 공격을 받아온 자신을 제대로 옹호해 주지 않은 한국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스페인 선수가 반칙하는 것을 똑똑히 봤고, 골이 들어가기 전에 휘슬을 불었던 만큼 당시 8강전은 한국 팀이 공정하게 이긴 게임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11일 귀국하는 이씨는 `홍명보 코치가 제일 좋아할 것이라며 한 달 정도 전시한 뒤 지인들과 상의해 영구 전시할 장소를 물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parksj@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medium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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