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곡(Impromptus)’이 주는 감동력은 무엇보다도 순수의 이미지 때문이다. 즉흥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천재적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만큼 과장이 틈탈 순간이 없는, 순수한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Ab (op. 90-4)’을 한번 들어보자. 마치 시냇물이 흐르는 듯… 수정같이 맑은 리듬이 느껴져 온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한마리의 물고기가 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던 그 순수했던 감성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지나간 숫한 순간들이 즉흥곡의 연탄음 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참 멀리도 왔다는 생각이다. 어제의 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맑고 투명했던… 눈부신 하늘을 보며 설레이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 현실에 찌들고 구겨진 자신을 본다. 열망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의 비밀(희망)이 없는 것만큼이나 무미하고 건조하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저 무료한 숨쉬기일 뿐일까? 아니면 찰라에 죽고사는… 기도이자, 염원일까?
리스트는 피아노를 가리켜 관현악을 대신할 수있는 악기라 하였다. 실제로 리스트는 베토벤이 남긴 9편의 교향곡을 피아노로 편곡하기도 했는데, 박력과 밀도면에서 오케스트라에 필적하고 있다. 피아노는 ‘악기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악기이다.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음역(표현력)은 타(악기)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그러나 폭넓은 음역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의 장점은 오히려 한 사람만이 연주할 수 있다는, 즉 즉흥적인 맛이나 통일성에 있다할 것이다. 피아노는 건반악기만이 줄 수 있는 속도감, 깊게 울리는 소리의 박력이 일품이다. 어딘가 즉흥적인 흥을 돋구기에 알맞게 고안된 악기라고나할까. 아무리 신중한 ‘소나타’라고해도 피아노 음은 어딘가 즉흥적인 맛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비창 소나타, 열정, 발트슈타인… 베토벤이 남긴 모든 위대한 피아노 소나타에서 즉흥적인 맛을 느낄 수 없다면 김빠진 맥주나 다름없을 것이다. 음과 음사이가 말 그대로 눈깜빡할 사이게 연결되는 피아노 음악이야 말로 즉흥곡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즉흥곡’이란 형식은 피아노 곡에서만 사용되고 있을 뿐 즉흥 바이올린 곡이라든가 기타 다른 악기의 즉흥곡은 없는 실정이다.
즉흥곡의 ‘즉흥’이란 말 그대로 일시적인 감흥에 이끌려 작곡됐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음악은 절반의 즉흥곡들이다. 그럼에도 특별히 ‘소나타’나 ‘조곡’등의 이름을 제쳐두고 ‘즉흥곡’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인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바로 즉흥곡이 주는, 어떤 천재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즉흥곡’처럼 아름다운 곡들이 또 있을까. 슈베르트를 위시, 몇몇 ‘즉흥곡’ 때문에 2차세계대전 직후에 일본의 수많은 청춘 남녀들 사이에 자살이 유행했다고하니 가히 ‘즉흥곡’이 주는 마력을 상상케 하고도 남는다.
즉흥곡은 원래 19세기 이전 막간극이나 캐논(canon)곡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즉흥적인 악상을 소품형식으로 지은 악곡을 말하며 특히 낭만파 피아노곡에 많이 사용되었다. 즉흥곡이 오늘날 처럼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17년 체코 작곡가 J.H. 보르세크가 처음 사용한 것이 동기가 됐으며 이 무렵부터 낭만파 사이에서 피아노곡으로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흥곡 하면 떠오르는 작곡가가 쇼팽과 슈베르트 등이다. 쇼팽은 유명한 ‘즉흥 환상곡’을 남겼고, 슈베르트 역시 기념비적인 8곡의 즉흥곡을 남겼는데 특히 즉흥곡하면 슈베르트가 떠오를 만큼 즉흥형식을 즐겨했던 작곡가가 바로 슈베르트였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즉흥의 천재였는데, 31세라고 하는 짧은 생애동안 베토벤보다도 많은 10편의 교향곡, 6백여 곡이 넘는 예술 가곡, 수많은 피아노 곡과 실내악곡을 남긴 슈베르트야 말로 가히 즉흥음악을 위해 탄생한 작곡가라 아니 할 수 없었다. 슈베르트는 가곡을 비롯 수많은 실내악곡들에서 모두 즉흥적인 재능을 발휘했는데, 특히 1827년, 그가 죽기 1년전에 4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 2편을 남겼다. 작품번호 90번에 기록된 4편과 작품번호 142번에 기록된 4편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모두 자유롭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과시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먼저 작곡된 ‘Op. 90’ 의 즉흥곡들이 다소 서정적이라면 나중에 작곡된 ‘op. 142’의 곡들은 다소 무게있고 예술성있는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들은 ‘Op. 90’ 의 작품들로서 특히 마지막 2곡 ‘Gb’, ‘Ab’등은 한때 청춘남녀들에게 자살 소동을 일으키게 했다고 알려진 작품들이다. 눈부신 서정미는 말그대로 죽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즉흥곡의 대명사와 같은 작품들이다.
즉흥은 찰라이자 시간 속에서의 진공을 말한다. 순수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어린 아이의 순수한 미소에 눈살을 찌푸릴 인간이 있을까. 인간은 순수하게 태어나서 세상 속에서 더렵혀지고 타락해 간다. 순수는 무지를 뜻하지만 세상을 역류해가는 용기를 말하기도 한다. 순수한 자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세상은 남을 누르고 올라서야만 성공할 수 있다. 순수니 예술이니 찾는 자들은 그만큼 비참한 현실을 인종해 갈 수 밖에 없다. 예술가가 비극적인 것은 동경에 대한 용기 때문이다. 찰라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찰라가 될 수 있는 자만이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용기를 가진 자들이다. 실제로 즉흥곡의 주인공 쇼팽과 슈베르트 등은 비극적이고 단명했다. 아름다운 패배냐…, 무료한 현실이냐… 타오르는 즉흥곡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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