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사태 배경과 향후 전망
레바논 사태가 심상치 않다. 이스라엘군 납치로 시작된 레바논의 시아파 민병대와 이스라엘간의 무력충돌이 6일째 계속되면서 양측의 인명피해가 250여명에 달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하이파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북부 도시에 400여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공군력을 동원, 베이루트 인근까지 공습 대상지역을 확대했다. 상호 공격 중단을 위한 국제사회의 중재노력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서로 받아들이기 힘든 타협 조건을 고집하고 있어 현재로선 성사 가능성이 희박한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헤즈볼라의 후원세력인 이란과 시리아가 본격적으로 얽혀들 경우 이번 사태가 4차 중동전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헤즈볼라 무력충돌의 배경을 정리한다.
<이강규 기자>
레바논의 베이루트 주재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세살바기 여자아이가 아빠의 어깨에 고개를 얹은 채 철수 수속을 밟으려는 레바논계 프랑스 관광객을 살펴보고 있다.
팔난민·주변국 개입으로 내전과 분열
■ 비극의 땅 레바논
얽히고 설킨 중동사태의 한 복판에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 레바논이 놓여 있다.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레바논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팔레스타인 난민은 물론 시리아와 이스라엘, 이란까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토호세력들간의 권력다툼으로 ‘내전 아닌 내전’을 치러야했다.
고작 450만명의 인구를 지닌 기독교 국가 레바논의 비극은 1948년 이스라엘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레바논으로 밀려들면서 이들의 인구가 1975년에 이르러 30만명으로 불어난 것. 레바논의 토호세력들이 종파를 따라 분열한 난민들과 얏세르 얏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내전으로 빠져들자 접경국인 시리아가 1976년 4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사태 해결에 나섰다. 당초 시리아는 분쟁의 촉매제인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몰아내 레바논의 내전을 진정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구실하에 출병했지만 2년만에 PLO의 비호세력으로 둔갑해버렸다.
한편 시리아 개입과 PLO의 세력확장에 위기를 느낀 이스라엘은 1968년, 1978년, 1982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북진을 감행, 레바논 남부를 점령하고 PLO 지휘본부와 난민들을 튜니시아로 몰아낸 후 2000년 유엔의 결의에 따라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기독교와 일부 시아파 회교도 및 드루즈인들이 1976년 조직한 남부 레바논군을 장악, 시리아와 이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등 레바논 무장 회교세력들과 레바논을 무대로 1990년까지 치열한 대리전을 펼쳤다.
이란-이라크 지원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남부 기반
■ 헤즈볼라의 탄생 배경
‘신의 당’이란 뜻을 지닌 헤즈볼라는 중동 회교권의 소수계인 시아파 국가들의 지원으로 1982년 레바논에서 결성된 민병대 조직이다.
중도의 회교국들은 거의 모두 수니파가 다수파인데 비해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은 시아파가 국민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레바논의 회교도 인구중 최대 종파 역시 시아파이다.
미국 CIA의 쿠데타 공작을 통해 집권한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1979년 시아파 성직자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혁명으로 붕괴된다. 중동의 새로운 강호로 등장한 호메이니 정권이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자극 받아 같은 시아파 회교국인 이라크와 손을 잡고 1982년 남부 레바논에 태동시킨 민병대 조직이 바로 헤즈볼라이다.
헤즈볼라는 1984년 12월 쿠웨이트 항공기 납치, 1985년 TWA 항공기 납치, 1994년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차량 폭탄테러, 1983년 241명의 사망자를 낸 베이루트 주둔 미 해병대 기지 폭탄 테러 등을 주도하는 한편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전쟁복구 및 빈민구제 사업으로 탄탄한 지지기반을 마련했다. 헤즈볼라는 후원세력이었던 시리아가 병력을 철수하자 레바논 회교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엎고 총선에 참여, 새로운 연합정부의 일원이 되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인구의 30%이상인 150만명의 지지를 받고 있다.
헤즈볼라 민병대원이 베이루트 인근 케이파르시마의 폭발지점을 향해 AK47 소총을 겨누고 있다.
하마스·헤즈볼라
동시 무력화 노려
■ 이스라엘 공격 언제까지
헤즈볼라는 지난 12일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초소를 공격, 2명의 이스라엘군을 납치하고 8명을 사살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지난달 25일 자국 병사 1명을 납치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압박을 가한다는 명목하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던 중이었다. 이스라엘은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의 결정에 따라 가자 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들을 모두 철수시킨 상황이기 때문에 자국민의 피해를 우려할 필요가 없이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온 수니파 무장조직 하마스가 민주적 선거를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접수’한 이후 속앓이를 거듭해온 이스라엘로서는 경제봉쇄에 이은 무력 과시로 하마스를 고사시킬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헤즈볼라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헤즈볼라의 느닷없는 강수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2005년 연정에 참여한 이후 가중된 무장해제 압력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설이다.
연정 참여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방대한 민병대를 거느린 헤즈볼라는 유엔결의안에 따라 무장해제를 하라는 주변의 끊임없는 압력을 받아왔고, 이스라엘 역시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에 배치된 헤즈볼라 민병대를 해체하고 수비병력을 레바논 정규군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던 상황이었다. 자신의 세력유지를 위해 민병대 유지가 절대 필요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의도된 도발을 감행, 무장해제 압박을 피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공분을 느낀 이슬람 세력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일석이조의 꾀를 냈다는 풀이다.
두 번째는 미국과 핵개발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을 돕기 위한 주의력 분산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헤즈볼라의 진의에 상관없이 이번 기회를 통해 골치거리인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동시에 무력화시키겠다는 이스라엘의 의지가 강해 레바논에서 터진 총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으로 사망한 한 이스라엘군의 장례식에서 전우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헤즈볼라는 로켓포로 이스라엘의 북부 항구도시인 하이파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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