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남편 뺏긴 월드컵 과부들의 탄식
‘6월 한달 동안은 남편과 딴세계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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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한달 동안 ‘월드컵 폐인’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월드컵이 싫다며 진저리를 치는 이들도 있다. 남편과 남자친구들을 월드컵에 빼앗긴 바로 ‘월드컵 과부(Worldcup widow)들’.
본래 이 말은 축구 강국인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생겨났지만 월드컵 안티세력도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월드컵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고 있다. 월드컵을 재앙처럼 여기는 영국의 주부 170여명이 ‘월드컵 과부들의 클럽’(www.worldcupwidowclub.com)을 결성해 ‘월드컵 과부로 살아남기 위한 10계명’ 등을 조언하고 있을 정도다.
한인사회에도 월드컵 바람은 거세다. 축구의 묘미에 빠져 슛팅 하나하나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발산하다 보면 이민생활의 스트레스가 날아버리고 새삼 조국과 하나되는 유쾌함과 엔돌핀이 살아나는 흥분의 감격에 눌려있던 체증이 풀려나가는 듯하다. 이미 월드컵 합동응원전은 주류 문화코드로서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마력의 힘을 뿜어내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에 무관심한 월드컵 과부들은 6월 내내 월드컵 소란(?)을 견뎌내야 한다. 플레즌힐에 사는 박한나씨는 “주말이면 골프에 남편을 빼앗겼는데 이제는 축구가 남편의 애인이 됐다”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지난 13일 새벽 6시 토고전이 열리던 날 함께 합동응원장소로 나가자는 남편의 청을 거절했다는 샌프란시스코의 정미영씨는 “밤낮 비즈니스로 바쁜데 축구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다”며 “월드컵이 열리는 6월 한달 동안은 남편과 딴세계 사람처럼 살아야겠다”고 원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플레즌튼에 사는 강경선씨는 “한 모임에 나갔더니 나만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대화에 끼기 힘들었다”며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는 6월은 서머캠프와 방학 스케줄 조정하기에도 바쁘다”고 말했다.
한 주부도 본보에 전화를 걸어 “본국 소식을 보려고 위성접시를 달았는데 방송사마다 축구만 내보낸다”고 항의하면서 “비디오도 축구특집으로 정규 프로들이 쉬기 일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월드컵에 열광하는 남편을 피해 한적한 휴양지로 피난을 떠난 아내들도 많고 ‘축구방영 금지’를 내건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고 있다. 본국의 한 시민단체도 지난 4일 “상업주의에 종속된 월드컵 열풍이 시급한 사회문제를 덮어버리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과열된 월드컵 열기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균형감각이 사라진 흥분과 열정은 소모적”이라면서 “월드컵을 좋아할 이유가 있다면 월드컵을 싫어할 자유도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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