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비행기는 연평도 하늘을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빨간 옷을 입은 붉은 악마의 외치는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대한민국 전체가 들떠 있는 것이 아닌가?
서울이나 시골 어디에 가도 월드컵 응원과 광고로 가득 차고 넘쳤다. 버지니아에 계신 아버지도 그럴 것이다. 4년 전에도 아버지는 그랬다. 모든 일을 제쳐놓고 TV와 신문에 매달리셨다. 고함까지 지르시며, 4강의 경기를 보실 때는 눈물까지 흘리셨다.
나는 미국 대학 3년생이다. 한국서 유학 온 여학생과 사기면서 한국 역사도 택했다. 한국어는 꼬부랑 액센트는 있지만 말은 할 수 있다. 점차로 나는 이북의 사정을 알기 시작했고,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이북에서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하면서 살고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이 유학생은 나의 양심의 구석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유복한 집에 태어났고, 재주도 많다고 했다. 사실 나는 공부하는 것 외에 바이올린을 키고, 기타, 피아노, 연극 등 못하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내가 모자란 것이 있다면 고상한 말로 긍휼이 없다고 했다.
사실 나는 대학생활이 지루해졌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안 해도 그냥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고, 기독학생회에 나가서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 나의 양심은 빛을 내고 있었다. 남들처럼 죽어라고 의과 대학이나, 법과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할 이유가 없는 삶에 대해 ‘나이브’ 하다고나 할까.
마침내 나에게 이변이 왔다. 유학생이 나를 Link라는 단체에 소개를 해준 것이다. 이 단체는 이북 사람들의 인권과 권리를 되찾게 하려는 운동을 한다고 했다. 우리 30여명은 미국 유수 학교에 재학중인 2세들로서 한국에 나가서 정부 및 대학교를 방문하여서 이 운동을 홍보하며, 여론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외무부와 전국 주요 대학교를 찾았다. 자세한 내용이 적힌 전단을 뿌리고 퍼포먼스와 강연도 했다. 의외로 정부와 대부분의 학생들이 무관심 했다. 아니 우리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혼동이 왔다. 어째서 한국민이 이처럼 장벽 너머 부모 형제가 처참하게 고통받고 있는데도 무심한 것일까? 나는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뽀개질 것 같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집에 도착하면 부모님께 무엇을 보고 왔고 경험했는가를 보고해야겠는데, 도무지 뚜렷한 보고 사항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만약 내가 1년 학교를 쉬고 Link 운동을 하고 싶다면 두말할 것 없이 아버님은 나에게 “네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오더니 정신이 돈 게로구나” 하실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머리는 어깨에까지 자랐고, 모자란 잠으로 눈이 충혈된 나를 보고 레이건 비행장에 마중 나온 친구들이 “야, 너 대-한민국 을 외치느라 잠을 설쳤구나”라고 했다.
나는 웃었다. 쿠키가 나를 보고 좋아라고 짖어대는 데도 아무도 내다 보지 않았다. 의자에 앉으신 채로 아버님이 상기된 얼굴만 돌리면서, “왔니” 하셨다. 환하게 밝은 TV로부터 ‘대-한민국’ 이라는 우렁찬 함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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