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다양해진 한인 사회
조선족·탈북자·고려인·혼혈·입양인 등 끼리끼리 뭉쳐
같은 피 흘러도 상호교류 거의 없고 서로 모른채 살아가
LA 한인사회의 구성원이 다양해지고 있다. 겉만 보면 똑같은 한인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가진 ‘코리안’들의 집합체가 우리의 실제 모습이다. 4.29폭동 이후 ‘한인들이 미국에 뿌리 내린다’는 보편적 개념의 표현으로 자리잡은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화 되는 과정에 선 우리의 속을 들여다봤다. <황성락 기자>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주류인 한국에서 온 이민자, 지상사 직원 및 유학생 그룹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온 조선족, 북한에서 온 탈북자, 그리고 스탈린 정권 하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던 ‘고려인’(카레이스키) 등이 모여 있는 것이 현재의 ‘코리안 커뮤니티’다. 여기에 이 곳에서 태어난 2세, 남미를 돌아 들어온 한인들, 혼혈, 입양아, 일본을 거친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한인사회의 구성원은 제법 복잡해진다.
어쩌면 이를 우리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 근·현대사를 맞으면서 일제를 피해 중국과 러시아로 생활환경을 바꿔야 했던, 그리고 정치와 이념의 논쟁에서 남과 북을 오가야 했던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와 경제적 빈곤이 한반도를 떠나 흩어져 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피가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모르고 살고 있는 것 역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인 셈이다.
▲같은 얼굴 다른 생활
한국에서 온 한인들은 통신수단의 발달과 각종 매체를 통해 거의 동시간대 생활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한국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반면 다른 구성원들은 여러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구 소련 붕괴 이후 민족주의가 급부상하면서 졸지에 이방인 신세가 된 고려인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집에서는 ‘플로브’(오일 종류로 볶은 쌀밥)에 육류를 주식으로 하고, 명절 등 좋은 날이면 보드카가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다. 또 한인들보다는 러시안들과 훨씬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러시아어로 진행하는 교회 예배에 함께 어울리며 피부색에 상관없이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4년 전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탈북자들도 역시 그들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최근 난민자격을 받은 6명이 망명에 성공했지만 LA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한국에 정착했던 사람들이다.
여성들은 주로 식당에서, 남성들은 택시기사, 전기수리, 식당 조리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일하고 있으나 대부분 저임금 육체 노동자가 많다. 또 생활권은 한인사회지만 한인들과의 관계는 적은 편으로 한국에서 얻은 불신감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사선을 수없이 넘어야 했던 지난 시간 탓인지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것 역시 이들만의 특징이다. 그러나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고, 불확실한 체류신분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려인 또는 탈북자들에 비해 조선족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활발한 편이다.
비록 고소득 화이트 칼러층은 적지만 많은 인구와 자신들만의 탄탄한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빠른 속도로 한인사회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조선족들이 미 입국 과정에서 빚을 져 이를 갚느라 애를 먹고 있으며, 역시 신분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한인사회 속 소수계
반면 한인사회 속의 또다른 마이너리티인 혼혈과 입양한인들은 여전히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인즈 워드 열풍이 한인사회에는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고, 입양아 출신 한인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 역시 미미한 상태다. 특히 혼혈의 경우 전체 한인 인구의 10%를 훌쩍 넘어서고 있음에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인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2세들의 전면 등장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에도 적절히 적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인들은 러시안 커뮤니티와 상부상조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아가페선교교회에서 함께 러시아어 예배를 갖기 위해 모인 고려인들과 러시안 이민자들.
<이승관 기자>
전문가 분석
“다양성 발전시키면 한인사회 발전에 큰 도움”
전문가들은 한인사회가 갖고 있는 구성원의 다양성을 발전시키는 것이 한인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민족이란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서로의 특성을 발전시키고 상호 존중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의영 칼스테이트 LA 사회학 교수는 “무조건 모든 것이 똑같아야 한다든지, 인위적으로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를 강제로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대신 자연적인 현상을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공통점을 재인식할 수 있는 매체를 활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익숙한 조선족은 한인사회와 중국 커뮤니티 또는 중국과의 가교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유 교수는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유대인 커뮤니티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미국에 모여 경제, 문화, 정치 등 각 분야에서 이룬 성과들을 분석하고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려인 로타 김씨(소셜워커)
한국말 못하는 고려인
러시아 문화에 융합
부모 모시고 사는 등
가족중시 전통 이어가
“고려인들은 러시아 문화와 관습에 융화돼 있습니다”
김씨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려인들이 러시아어만을 구사, 결국 러시안 커뮤니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한인사회와 교류는 미진한 편이다.
이들은 한인사회를 돈을 중시하고 자기들만의 공간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한 집단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려인들도 한민족의 피를 갖고 있다.
김씨는 “부모를 모시고, 함께 일해 모은 돈으로 집을 사기도 한다. 그만큼 ‘가족’이란 개념이 중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려인 역시 따지고 보면 구성원이 여럿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뒤 정착한 지역에 따라 식생활 등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면 우즈벡 출신은 플로브에 각종 육류를 즐기고, 러시아 출신은 미트볼에 야채수프를 즐겨 먹는다고 김씨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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